[집중 인터뷰]정우성은 더이상 배우가 아니다
제작자·연출가로 다방면 활동 이어가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제작자 맡아올해 중 장편 연출 데뷔작 공개 예정"이런 경험 살려 더 많은 작품 욕심"[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정우성(49)은 2014년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단편영화 '킬러 앞에 노인'을 선보였다. 정우성이 영화 연출에 욕심이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얘기였다. 그는 자신의 관심을 관심으로만 두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누구도 정우성을 감독으로 부르지 않았다. 정우성이 2016년에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를 기획·제작했을 때도 그랬다. 누구도 그를 제작자라고 칭한 적이 없다. 그가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배우 일을 하면서 간간히 시도해보는 일종의 외도로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우성을 배우로 한정하는 건 이상한 일이 됐다. 연출가로서 또는 제작자로서 최근 그의 행보는 꽤나 본격적이다. 우선 그는 제작비만 약 25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를 제작했다. 수백억원이 투입된 작품을 만드는 일을 누구도 부업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배우 이정재가 연출을 맡은 영화 '헌트'도 제작했다. 이 영화에도 1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 '보호자'가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를 배우 겸 제작자 겸 감독으로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최근 정우성을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지난해 12월24일 넷플릭스를 통해 SF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내놓은 그는 "첫 이틀 간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냈다"며 "배우로 일할 땐 내 연기만 봐도 됐지만, 제작자 입장에 서보니 전체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반응까지 살피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제작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알았다"면서도 "그래도 이번 경험을 살려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고요의 바다'가 제작자로 두 번쨰 작품이다. "사실 첫 번째 제작한 '나를 잊지 말아요'는 배우로도 출연했기 때문에 제3자 입장에서 보기가 힘들었다. 이번엔 온전히 제작자로 참여했기 때문에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공부했다." -'고요의 바다'가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3위까지 올라갔다. 제작자로서 기분이 어땠나. "24일부터 25일까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배우로 출연하게 되면 캐릭터 구현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의 목적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됐다. 그런데 제작자가 되니 전체적인 완성도는 물론이고 반응도 지켜봐야 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그 많은 시선을 받는 게 상당히 큰 부담이었다. 더 냉정하게 우리 작품을 보려고 한다. (제작 과정에서)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반성하고 있다." -왜 제작을 하게 됐나. 이왕 제작을 하게 됐으니 제작자로서 포부 같은 게 있을까. "제작을 하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었다. 연출에 대한 꿈은 있었지만. 제작을 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후배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출구를 못 찾고 있었다. 내가 도와주고 싶었다. 원래는 제작사를 소개해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미흡하긴 하지만 직접 제작을 해보자고 용기를 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포부는 없다. 제작자로서 뭘 하겠다는 것보다는 '고요의 바다'를 제작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나 노하우를 활용해 다른 작품을 또 한 번 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점점 더 욕심이 난다." -제작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난 어쨌든 배우이지 않나. 철저히 제3자 입장에서 배우들이 캐릭터를 구현해가는 걸 지켜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재밌더라.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오히려 더 커졌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흥행의 기준이 '오징어 게임'에 맞춰진 느낌이다. "너무 가혹하다. 그 기준을 빨리 깨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작품은 할리우드에도 몇 개 안 된다. 흥행을 기준 삼아 작품을 보게 되면 특정 작품 고유의 재미나 메시지를 놓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고요의 바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다. 호평과 혹평 통틀어 기억에 남는 평가가 있나. "음…다른 말보다도 재밌게 봤다는 말이 제일 좋더라. 추상적인 말이긴 한데, 왜 재밌었냐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각자 생각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재밌냐고 묻기는 좀 어렵더라. 어쨌든 재밌다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도전을 응원한다는 반응도 좋았다. 이 작품이 가진 의미를 이렇게 봐달라고 시청자에게 강요할 순 없다. 도전에 대한 얘기는 우리가 알아주길 원했던 의미를 짚어준 것이어서 좋았다." -배우는 물론 전 스태프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촬영장에 넉넉하게 음식이나 간식을 지원했다는 얘기가 있다. "당연한 거다. 아주 작은 혜택일 뿐이다. 그 작은 걸 통해서 즐길 수 있는 현장이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물론 우리는 각자 프로로서 계약을 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낸다는 것, 그 결속력이 중요하다. 일터는 즐거워야 한다. 누군가는 즐겁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안다면 그건 좋은 일터가 아니다. 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배우와 제작자, 어떤 게 더 어렵나. "다 어렵다. 어떤 게 더 어렵다고 하기는 힘들다. 수치화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제 영화 '보호자'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도 앞두고 있다. "연출을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정말 재밌더라.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다. 내가 연출자로서 어떤 관점을 제시했는지, 얼만큼 해냈는지는 작품을 보고나서 평가해달라." -가장 친한 친구인 이정재 배우도 당신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이정재 배우도 최근 영화 '헌트'로 연출 데뷔를 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함께 의논하기도 하나. "공통 의사결정을 해야 할 떈 같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각자 활동 영역이 있다. 내가 '고요의 바다'를 제작할 땐 정재씨는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정도다. 나도 그렇다. 우린 서로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응원한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정재 배우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옆에서 지켜볼 때 어땠나. "좋았다. 뿌듯하고. 그냥 옆에서 지켜만보더라도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 모두가 그러지 않았나. 지금까지도 즐겁고 좋다." -'오징어 게임'으로 우리 대중문화 판도가 바뀌었다. 세계 시장으로 더 빠르게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작하는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세계인이 다른 나라의 작품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빠르게 자리잡은 건 코로나 사태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다만 코로나가 없었어도 이런 상황은 언젠가 왔을 것이다. 새로운 현상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K콘텐츠도 마찬가지다. 난 영화인으로서 이미 한국 콘텐츠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속도가 느렸을 뿐이다. 한순간에 빵 터진 현상이 아니라는 거다. 세계인이 한국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보고 평가한다는 건 벅찬 일이다. 그만큼 큰 책임감도 동반될 것이다." -배우로, 제작자로,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게 있나. "없다 지금 하고 있는 걸 잘해야 한다. 이것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가야 한다. 내가 한 작품을 잘했다고해서 그 다음 작품을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