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참사 1주기] <하> 미봉책 아닌 관행 바꿀 근본 해법 찾아야
'불법하도급 엄벌·징벌적 배상 도입' 법제화 1년째 검토 중'건축안전센터' 입법, 정착은 아직…설치 지자체 확대 필요'상주감리제' 진전…7개월 만에 또 붕괴 사고, '실태는 여전'"기간·비용 그대로면 공염불" "현실 감안한 양성화도 검토"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를 계기로, 우후죽순처럼 재발방지책이 쏟아졌지만, 화정아이파크 사고를 비롯해 건설 현장 재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재해 예방·처벌 강화 중심의 규제만으로는 뿌리 깊은 관행·문화를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정 기간에 쫓기고 공사비에 쪼들리는 건설 현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를 계기로 다양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재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공정별 다단계 불법 도급 거래로 공사비가 대폭 깎였고, 이로 인한 부실 날림 철거가 참사로 이어졌던 만큼, 불법 하도급에 대한 엄중 처벌 의지를 분명히 했다. 법 개정 방향의 핵심은 불법 하도급 관련 발주자와 원·하청사 책임자 모두 형사 처벌하고 건설업 등록 말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검토한다. 건설산업기본법 등 법령 개정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입법 성과는 아직이다. 반면, 참사 대책 중 하나였던 '지역건축안전센터 신설'은 지난해 12월 건축법 개정으로 실현됐다. 참사 당시 관할 지자체가 공법 무단 변경, 감리 소홀 등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는 뼈 아픈 교훈에서 나온 대책이다. 각 지자체가 분야별 전문가를 위촉해 구성한 센터가 건설 현장 안전을 감독, 효율성·전문성을 꾀하자는 취지다. 지난달 기준 지역건축안전센터를 설치한 전국 자치단체는 75곳이다. 인구 50만 명 이상 의무 설치 지자체 41곳 중 6개 지자체는 센터를 신설하지 않았다. 충남·충북·전북·경북·제주 등 광역지자체는 여전히 센터가 없다. 광주의 경우, 광역지자체인 광주시와 각기 학동 참사와 화정아이파크 사고를 계기로 동구·서구 만이 지역건축안전센터를 두고 있다. 일각에선 시·군·구 지자체에서 상당수의 건설 현장의 사업계획을 승인, 관리·감독하고 있는 만큼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입법에 참여한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인구 50만 명으로만 제한하면, 기초지자체 대부분이 의무 대상에서 빠진다"며 "광역시 자치구, 개발 이슈가 있는 시·군에선 다수의 중·대형 건설 현장을 관리·감독하고 있지만 건축 공무원의 역량엔 한계가 있다.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철거 현장 상주 감리' 의무화도 의미 있는 진전으로 꼽힌다. 학동 참사 당시 감리는 현장을 비웠고 감리 일지조차 쓰지 않는 등 '현장 안전의 최후 보루'인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른 공사와 달리 철거 공정은 감리의 현장 상주 의무 규정이 없었다. 이에 국회는 지난달 본회의에서 철거 공정 상주 감리제를 골자로 하는 '건축물관리법 일부개정안'을 의결, 통과시켰다. 그러나 학동 참사 이후 쏟아진 재발 방지책에도 불구하고, 불과 7개월 만에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발생하는 등 현장 실태는 여전하다. 결국 현장의 오랜 관행부터 바꿀 근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준상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지부 조직부장은 "잇단 재해로 표면적으로 재해 예방·안전 관리 조처는 강화됐지만 무리하게 공사를 몰아 부치는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며 "각종 법 제도 시행으로 관리·감독이 강화되면서 절차가 늘고, 시간은 더 들수 밖에 없지만, 공정 기간·공사비는 그대로다. 이대로면 공염불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처벌·규제 강화가 능사는 아니다. 불법 하도급, 부실 날림 시공을 근절할 수 있도록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 입법을 촉구했다. 발주자와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현장 내 모든 주체에 안전 관리 책무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 시행을 통해 발주 설계부터 안전한 공법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단계별 적정 기간·비용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격만 따지는 '최저입찰제' 대신 실질 공사비를 반영한 도급 계약 구조가 정착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윤춘수 한국노총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장은 "최저입찰제가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중소 하도급 업체의 수익성 약화와 건설 노동자의 임금 체불 문제로 이어진다"며 "결국 원도급사(시공사)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구조다. 공정별 전문건설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깎인 공사비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발주자가 입찰 견적 산출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면, 이를 토대로 입찰사가 직접 낸 가격으로 응찰하는 '순수내역입찰제'를 제안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을 모두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공·철거 등을 2·3차 하청사와 이른바 '시공팀'이 도맡고 있다"며 "전문건설사가 합법적으로 시공 인력을 직접 고용하도록 유도하고, 실력 있는 업체의 불법 외주계약은 양성화해 감독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