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 중대재해법 본격 시행…“1호가 될 순 없잖아”
[서울=뉴시스] 산업부 = 27일부터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건과 2020년 38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이천 참사를 계기로 제정됐다. 지난해 1월8일 국회를 통과한 후 1월26일 제정됐고,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됐다. ◆사망사고땐 1년 이상 징역·10억 이하 벌금…5인미만 사업장 미적용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이중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로 사업장에서 사망자rk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 사고로 전치 6개월 이상의 부상자 2명이 발생할 경우, 동일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뜻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급성중독, 화학적 인자, 열사병, 독성 감염 등 각종 화학적 인자에 의한 24개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도 중대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산재에 해당하기 위해선 업무에 관계되는 유해·위험요인에 의하거나 작업 등 업무로 인해 발생한 직업성 질병임이 증명돼야 한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중대한 산업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관련 시설·장비·장소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원청도 책임을 지도록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의무 주체는 원칙적으로 대표이사지만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안전담당 이사)도 경영책임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법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재해 발생시 재발방지 대책 수립·이행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의 개선·시정명령 이행 ▲안전·보건 관계법령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을 해야 하며, 이를 어겨 중대재해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적용받을 수 있다. 법인 또는 기관의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사망 외 중대산재의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법인 또는 기관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이 법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또 정부는 산업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현장에 대해서는 2024년 1월27일까지 법 적용을 유예했다. ◆경영계 대응책 마련 분주…법 불확실성 우려도 중대재해 발생률이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철강·석유화학·조선업·건설 등의 업종을 중심으로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을 신설하거나 안전 조직을 강화하는 기업이 늘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설했다. 현대차는 CSO에 국내생산담당 임원인 이동석 부사장을 선임했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연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울산공장장이던 하언태 전 대표이사 사장이 퇴진한 이후 국내 공장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기아도 최근 대표이사인 최준영 부사장을 CSO로 선임했다. 최 부사장은 2018년부터 기아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의 대표이사도 역임하고 있다. 광주공장의 총무안전실장과 노무지원사업부장,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대차·기아는 이 부사장과 최 부사장이 각 사업장에 있던 안전관리 조직을 총괄하며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업무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양사는 CSO 신설과 함께 안전 관련 조직 강화 및 인원 확충에도 나섰다. 현대차는 올해 1월 1일자로 본사에 대표이사 직속으로 안전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본사뿐만 아니라 연구소와 생산공장 등에는 안전 관련 전문 인력을 충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를 통해 ‘보건기획실’이란 이름의 산업보건 관리조직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작업자의 위생관리뿐 아니라 질병 및 감염병 방지, 유해인자 차단 등 직원들의 건강 보호·증진을 위해 마련됐다. 현대제철도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신설하고 상무급 인사를 임명했다. 현대중공업도 안전생산부문장과 안전경영부문장의 직급을 각각 부사장과 전무로 승격했다. 안전생산부문장은 엔진기계사업부 생산현장의 안전을 총괄하는 자리이며 안전경영부문장은 전사 안전을 총괄한다. GS칼텍스도 CSO 자리를 대표이사에 맡겼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도 역시 ‘안전 담당 임원’을 신설하거나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안전사고 책임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CSO를 부사장급으로 격상해 신규 선임했고, 현대건설·한화건설도 CSO 자리를 신설했다. 롯데건설도 안전보건부문을 대표 직속의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했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전사적 위기관리 차원에서 ‘주요 리스크 관리 조직’(CRO)을 신설했고, SK하이닉스는 기존 ‘개발제조총괄’을 ‘안전개발제조총괄’로 확대 개편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재계의 대응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산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오죽하면’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처벌 조항이 모호한 데다, 처벌 강도도 과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71개 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의 안전관리 등 담당자 77.5%가 중대재해처벌법 상 경영책임자 처벌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애로사항은 ▲모호한 법조항(해석 어려움) 43.2% ▲경영책임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 25.7% ▲행정·경제적 부담(비용 등) 21.6% ▲처벌 불안에 따른 사업위축 8.1% 순이었다. 과도하다고 답한 응답자의 94.6%는 추후 법 개정 또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회원사 151곳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에서도 차기 정부에서 서둘러 개선할 노동 관련 법·제도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선’(33.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최근 경총 이동근 부회장은 최근 "중대산업재해 발생사업장의 법 적용과 관련된 많은 다툼과 혼란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도 책임자가 불명확하다며 마찬가지로 모호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지난해 국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의 약 80%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속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3년간 법 적용이 유예된다. 더구나 산재 사망사고의 35.2%가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는 데, 중대재해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