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하종현 화백 '밀어내기' 향연...'접합'→'다채색 접합'→'이후 접합'
국제갤러리서 대규모 개인전 15일 개막대표 작품 '접합'~‘이후 접합’ 연작까지 39점 전시코로나 시대 새롭게 작업한 '이후 접합' 6점도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60여 년간 밀어냈다. 마대와 물감의 전쟁속 그는 ‘접합'에 성공했다. 밀어내 이어붙인 '접합'은 동시대 현대미술에 '접합'해 변화무쌍해졌다. 단색에서 다색으로 그리고 재료를 초월해 자유자재로 접합한다. 하종현(87)화백이 평생 천착한 '접합(Conjunction)'연작이다. '접합' 작품은 캔번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일명 '밀어내기' 기법으로, 하종현의 특허 같은 그림이다. 세계 미술사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예술세계다. 물감 한 색을 마대 뒤에서 밀어낸 '접합'은 그를 '단색화 거장'으로 등극시켰다. '마대와의 전쟁'은 가난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 직후 미대에 들어가 캔버스 살 돈이 없이 살았던 시절, 미군이 버리고 간 '마대 자루'는 그에게 보물이 됐다. 올이 굵은 마댸는 성기면 성긴대로, 얇으면 얇은대로 물감을 밀어내면 그대로 작품이 됐다. 마대에 그리기 어려워 택했던 방편이 일생의 작업으로 그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1960년대부터 했으니 평생을 마대와 싸운 셈"이라며 "외국 유학한 적 없는 토종 한국 미술인으로 이젠 세계에서 내 그림을 보러 한국에 온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하종현의 대표 작품 '접합'은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으로 혁신을 이뤘다. 앞에서 물감을 칠하는 그림에 반하는 작품으로, 하종현만의 노동집약적이고 독창적인 기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일 국제갤러리에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이후 접합' 신작을 공개한 그는 "나이 90을 앞두고 있는데, 함께 공부했던 친구(동료)들은 갔는데...이 나이에도 작업을 하고 있는게 신기하고 행복하다"며 말을 쏟아냈다. 2019년 부산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코로나19 사태속 집에 박혀 작업에만 몰두했다는 그는 "사람을 못 만나 외로웠다"고 했다. 하 화백은 이번 전시에 '접합' 연작 총 39점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2021년 이후 새로 작업한 '이후 접합' 연작 최신작은 6점이다. "거리두기 시대, 누가 작품 보러 오겠나 생각해 귀찮아서 간담회에도 갈까 말까 했는데,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와서 놀랍고 반갑다"며 반색한 화백은 "옛날에는 기자들이 작업실에도 찾아와 술을 함께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지금은 세상이 변해, 문화면도 달라지고, 기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게 아쉽다"며 모인 기자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날 간담회에는 새해 첫 유명화가 전시이고, 노화백의 신작 발표인 만큼 수십명의 기자들이 모여 그를 둘러쌌다. 평소 휠체어를 탄다는 그는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다며 휠체어 없이 간담회 자리에 섰다. 건강한 모습이었지만, 걸을때는 양 옆에서 부축임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작품앞에서 사진을 찍을땐 손가락으로 V자를 인사를 하는 등 밝은 모습으로 천진스런 거장의 면모를 보였다.
◆국제갤러리 전관서 하종현 개인전...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접합' 연작 전시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는 하종현 화백 개인전을 대규모로 선보인다. 2015년, 2019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하 화백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서울점 전관(K1, K2, K3)에서 개막한 전시는 하 화백의 상징 작품인 ‘접합(Conjunction)’ 연작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확장되고 있는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접합에서 다채색 접합,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으로 이어진 작품은 거대한 화면에 밀어내기를 반복한 노장의 열정이 그대로 담겼다. 기존 ‘접합’ 연작이 마대를 평면적으로 사용하고 두터운 물감으로 물성을 살린 작업이라면, ‘이후 접합’ 연작은 나무와 나무가 접합해 짜낸 물감이 도드라지는 입체성이 부여된 작업이다. 천으로 싼 '나무 조각'의 사용은 회화와 오브제의 ‘접합’을 이루고, 새로운 회화적 평면을 창조해 ‘접합’의 범주를 확장했다. 색색의 물감들이 나무 조각 사이에서 밀려나와 이전 '접합'보다 다채롭고 신선함이 매력이다. 마대를 넘어 재료를 넘어 색과 색도 넘어 '회화란 무엇인가?'의 화두의 절정에 이르른 분위기다.
코로나 시대 새롭게 작업한 신작 '이후 접합'은 무지개색으로 밀려나온 물감의 향연과 붓질로 완성한 색채의 리듬감이 돋보인다. 평생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은 하종현 화백의 '끈질긴 미학'과 승리감이 도취되어 있다.(신작은 이미 모두 팔렸다고 한다.) 물성 실험과 특유의 에너지로 직조된 평면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회화언어를 구축해온, 하 화백은 명실상부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다. 이번 개인전은 서구 미술에 기대지 않은 채 작가 스스로 발견한 재료와 방식의 실험정신으로 동시대 현대미술을 어떻게 ‘접합’해왔는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한편 하종현 화백은 이 전시에 이어 베니스로 진출한다. 3년 만에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인 4월 21일부터 8월 24일까지 베니스 팔라제토 티토(Palazzetto Tito)에서 회고전을 개최한다. 현지 비영리 기관인 폰다치오네 베비라콰 라 마사(Fondazione Bevilacqua La Masa)의 주최로 열리는 이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로 결정됐다.
◆단색화가 하종현 화백은? 1935년 경남 산청 출신으로 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역임했다. 밀라노 무디마 현대미술재단(2003), 경남도립미술관(200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2012)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으며, 뉴욕, 런던, 파리 등 전세계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2012),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 '단색화'(2015),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과정이 형태가 될 때: 단색화와 한국 추상미술'(2016), 상하이 파워롱미술관 '한국의 추상미술: 김환기와 단색화'(2018) 등 주요 단색화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하종현의 작품은 최근 소장된 파리 퐁피두 센터를 비롯해 중국 박시즈 미술관, 네덜란드 보르린던 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홍콩 M+, 도쿄도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주요 미술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