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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더 배트맨' 복수의 피 대신 택한 구원의 흙탕물

등록 2022-03-16 05:23:00   최종수정 2022-04-04 09: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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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더 배트맨'은 흑(黑)과 적(赤)의 영화다. 흑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썩을대로 썩은 고담이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색이다. 그 도시에서 부모를 잃고 헤아릴 길 없는 비탄과 우울에 빠져 있는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색이기도 하다. 정의보다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보여주는 색이며, 그래서 소위 말하는 밝은 미래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비유하는 색이다. 이런 장소에서 너무 간단히 소외되고만 힘 없는 자들의 색이기도 하다.

이 암울한 곳에 피와 복수가 없을리 없다. 역시나 '더 배트맨'은 고담 시장이 늦은 밤 머리에 붉은 피를 흘리며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적색은 곧 죽음의 빛깔이다. 게다가 이 붉은색은 복수의 색이기도 하다. "나는 복수다"라고 말하며 어둠 속에서 걸어나온 이 우울한 배트맨은 총격과 폭발이 만들어내는 폭력의 붉은 화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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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이건 우리가 흔히 알던 슈퍼히어로의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배트맨에겐 영웅에게 내재돼 있다는 그 어떤 특별함도 없다. 캡틴아메리카에겐 초인적 힘과 함께 그에 못지 않은 정신력 그리고 꺾이지 않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배트맨에겐 이런 게 없다. 그는 흑과 적으로 이뤄진 이 암울한 도시 고담과 똑 닮아 있을 뿐이다. 웨인은 말한다. "배트맨으로 활동한 뒤 고담의 범죄는 오히려 더 늘었다."

'더 배트맨'의 배트맨은 영웅이라기보단 반영웅이다. 이때 악당 리들러는 배트맨에 맞서는 빌런이 아니라 차라리 배트맨의 짝패다. 리들러는 자신을 버린 도시 고담과 이 도시를 부패하게 한 썩어 빠진 이들을 겨냥해 복수한다. 웨인이 배트맨이 된 것도 부모를 죽인 범죄자들에게는 물론이고 범죄자가 판치는 고담에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나는 복수다"). 두 사람의 목표는 같다. 검정 복면을 쓴 고아라는 것도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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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리들러는 더 직접적으로 배트맨의 존재 의미에 관해 묻는다. 리들러에 따르면,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오히려 악당에 가까우며 자신이 오히려 배트맨보다 도덕적·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부모를 잃긴 했지만 고담에서 가장 부자이고 최상류층인 네가 과연 소외된 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가.' '네 아버지 토머스 웨인은 고담이 부패하는 데 일조한 장본인인데, 네게 과연 이 도시의 범죄와 맞설 만한 자격이 있는가.' 이제 (또 다른) 리들러가 배트맨을 겨냥해 이렇게 말한다. "난 복수다."

이제 브루스 웨인은 중대한 결단 앞에 선다. 배트맨은 무엇이 될 것인가. 자기모순과 자기연민에 빠진 그저그런 자경단 중 하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고담을 구원할 유일무이한 영웅이 될 것인가. 물론 그의 선택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영웅이 되느냐다. 아마도 그 시작은 리들러와 절연하는 것이다. 그렇게 배트맨은 복수를 버린다. 악당을 처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담 시민을 구하기 위해 싸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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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은 이때 다시 흑과 적의 이미지로 뒤덮인다. 리들러가 도시에 복수하기 위해 희생양 삼은 무고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 배트맨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그리고는 붉은색 조명탄을 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그 어둠을 몰아내고 시민을 구해낸다. 그렇게 그는 피와 복수의 색이었던 적색을 희망의 빛으로 전환한다. 사람들은 그런 배트맨을 따라 천천히 어둠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배트맨은 더이상 자신의 상징과도 같던 어둠 속에만 갇혀 있지 않다.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해 해가 뜨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하는 게 배트맨의 기존 방식이었다면, 복수가 아닌 구명(救命)을 택한 한 배트맨은 기꺼이 아침 해가 뜬 이후에도 시민들과 함께한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나타났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자경단이 아니라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 고통받는 자들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영웅의 길을 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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