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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학동 참사의 고통과 상처…"교훈 되새겨야"

등록 2022-06-06 0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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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유족 심리상담 소용 없어…대인기피증·우울증

"물건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사고 당시 굉음 떠올라"

"추모 공간 마련하고, 안전 위한 최소한 원칙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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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12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4구역 참사 현장에 추모객이 놓아둔 꽃다발이있다[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아직도 시곗바늘은 6월 9일 오후 4시 22분에 멈춰있고, 고통은 여전합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충격이 커 일도 사람과의 만남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해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사업 정비 4구역에서 철거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부상자와 유족들은 그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학동 붕괴 참사 1년을 사흘 앞둔 6일 부상자 A씨의 자녀는 "어머니가 '학동 참사 피해자'라는 꼬리표에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A씨는 당시 무등산에 가려고 버스 둘째 칸에 앉아 있었다. 정차 중 '쾅'하는 굉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버스 안을 뒤덮었다.

어둠 속에서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만 들렸다. 희미한 정신을 붙잡고 잔해 사이에 웅크린 채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뼈가 부서진 고통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A씨는 어깨, 늑골 등 23곳이 골절돼 장시간의 수술을 받고 퇴원까지 6개월이 걸렸다.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은 회복됐지만, 문제는 마음이 병이었다.
 
'무섭다', '두렵다'는 감정 표현이 급격히 늘었다. 큰 소리가 나거나 물건이 떨어지기만 해도 쉽게 놀라며 그날 사고 당시 났던 굉음을 떠올린다. 예민해진 탓에 밤잠도 설친다.

A씨는 참사의 고통으로 버스도 타지 못한다. 생활 반경도 집으로 축소됐다.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와 지인들의 만남을 피하면서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집안일조차 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멍하니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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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한 주택 철거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정차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사진은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2021.06.09. [email protected]

유족들도 공허함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족 B씨는 아내의 마지막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사고 당일 점심께 평소처럼 일터에서 아내와 '집에서 밥 잘 챙겨 먹으라'며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B씨는 "아내와 했던 마지막 통화가 잊히지 않는다"며 "집에 있는 줄 알았는데, 저녁 찬거리를 사 오다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B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터로 복귀했지만, 순간순간 아내가 떠올라 울렁증이 일었다. 퇴근 이후 빈 집에서 아내 없이 홀로 밥을 먹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B씨는 주변의 권유로 두 차례 상담 치료를 받았지만, 그날의 충격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B씨는 "상담 치료를 받을수록 그날의 생각만 또렷해져 치료를 중단했다"며 "참사 1주기가 다가오면서 아내 생각에 일이 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산행하면서 먹먹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추모 공간 조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보다 수익만 좇는 건설업계의 관행을 뿌리 뽑고, 중대재해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뜻이다.

B씨는 "시민들의 기억에서 참사가 지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추모 공간을 조성해 참사의 교훈을 되새겼으면 한다"고 밝혔다. A씨의 자녀도 "날림 공사나 불법 재하도급 관행 타파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의 광주 학동 붕괴 참사 유가족협의회장은 "추모 공간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거창한 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과 원칙을 지키고, 인재가 재발해선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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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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