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히 하하" 이날치, 줄타기 미학…이번엔 천문학자의 사이키델릭
'범 내려온다'로 신드롬을 일으킨 얼터너티브 팝 밴드28~30일 LG아트센터 서울서 신작 '물 밑' 공연박정희 연출·여신동 무대 디자이너와 협업
조선 후기 팔명창에 속하는 판소리 명창 이경숙(1820~1892)이 줄타기를 하던 젊은 시절, 날치 같이 날쌔게 줄을 잘 탄다고 해서 얻은 예명이 '날치'. 인디 신(scene)에서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굵직한 국가 행사 무대에 오르고, 아날로그 식으로 작업을 하면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증강현실(AR) 같은 최신 디지털 프로젝트도 병행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 역시 잽싼 경계의 줄타기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함부로 못박지 않는다. 이날치가 오는 28~30일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SIGNATURE) 홀에서 선보이는 신작 '물 밑' 역시 이들의 작업 방향성을 함부로 규정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한다. 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이날치 리더 장영규는 "이런(밴드) 포맷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양정웅 연출의 의뢰로 '수궁가'를 작업한 것을 계기로 팀이 결성됐을 당시에도, 2019년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현대카드 큐레이티드 53: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으로 데뷔를 했을 때도,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현란한 몸짓이 함께 한 '범 내려온다' 퍼포먼스 영상(20일 현재 유튜브에서 1719만뷰)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을 때가 모두 그랬다. '범 내려온다'가 삽입된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은 온라인 누적 조회 수 6억 뷰를 돌파했다. 두 대의 베이스와 드럼, 네 명의 판소리 보컬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하모니와 주술과도 같은 가사로 사람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범 내려온다'를 비롯 '어류', '토끼', '호랑이', '자라' 등 11곡이 실린 1집 '수궁가'(2020)는 1980년대 신스-팝과 뉴 웨이브가 엿보이는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 위로 판소리 솔로와 합창이 교차, 반복되며 신선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이날치는 이 음반으로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등 3개 부문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날치는 이번에도 예상한 길을 헤엄쳐나가지 않는다. '수궁가'에 이어 판소리 다섯 마당 연작을 이어가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섰다. 생명의 근원지인 '물 밑'을 찾아가는 천문학자의 여정이다. 영화·공연 음악감독이기도 한 장영규와 '시련', '장 주네', '백치', '오일' 등의 작품을 함께 한 박정희 연출이 썼다. 판소리에서 자유리듬으로 사설을 엮어 나가는 '아니리' 형식의 곡들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 이미 최근 강원 철원에서 열린 음악 축제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2022'과 유럽 투어에서 떼창을 유도한 '히히 하하'를 포함한 10여 개의 신곡들이 퍼즐 조각처럼 이어진다. 연극이나 음악극이 아닌 콘서트 형식으로,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박정희 연출님과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작년 LG아트센터 공연 때 박정희 연출님이 보러 오셔서 함께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고 마침 LG아트센터에서도 같이 작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재개관을 하는데 새로운 공연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저희가 1집을 낼 때도 양정웅 연출님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수궁가를 소재로 만든 음악극) '드라곤 킹'이라는 작업을 하고 나서 그것이 밑바탕이 돼 이날치라는 팀이 만들어졌거든요. 이번에도 박정희 연출님과 작업이 끝난 후에 이 작업을 바탕으로 2집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장영규) -지난달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 네덜란드 로테르담,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치 등 유럽 4개국 5개 도시 투어 '나이스 투 미트 유 투어(Nice to Meet You Tour)'를 성료했습니다. "기대도 했고 우려도 했는데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아무래도 저희 멤버가 이렇게(소리꾼 위주로) 돼 있다 보니, 음악적으로 판소리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어 국지적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을 했거든요. 다행히 그런 거랑 별개로 이날치의 음악 자체가 잘 받아들여진 거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음악이 출발은 어디에서 했는지 모르겠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잘 가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더 나아가 확신을 얻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안이호)
-유럽 투어에서 가사를 전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요? "자막은 없었고 '수궁가'라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보니까 노래 중간에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게 제가 영어로 준비해서 전달 드렸어요. 처음 시작은 안이호 씨가 우리말로 '아니리'를 해주시고, 제가 영어로 간단히 설명을 했습니다."(신유진) "영국도 그렇고 따라부르시는 외국인들이 꽤 많더라고요. 저희도 놀랐어요. 타이밍에 맞춰서 추임새 하는 관객분들도 있었고요. 그런 게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언어에 대해 특별히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어요."(박준철) -해외에서 어떤 피드백을 받으셨나요?
"영국에선 브라이언 이노(앰비언트 뮤직의 창시자로 영국의 거물 프로듀서로 통한다. 콜드플레이 등과 작업했으며 네이버 온스테이지 '범이 내려온다' 영상을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에게 추천하기도 했다.)가 저희 공연을 보러 와서 깜짝 놀랐어요. 스튜디오에도 초대를 받아서 갔고요. 이날치의 음악에 대해 '익숙한 음악에 이상한 노래가 들어가 있는데 재밌다'라고 하시더라고요."(안이호) "이노 프로듀서님이 하신 말씀 중에 '노래들이 기존 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는데 그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가 기억에 남아요. 음계 차이 등 판소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흐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느끼신 거 같아요."(박준철) -'물 밑'은 어떤 이야기인요. "저 같은 경우는 한국 설화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또 옛날 이야기에서 가져오면 계속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 같아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죠. 이날치라는 팀이 판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게 많으니 다섯 바탕 안에서 꺼내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고 기대하셨죠.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판소리를 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업이 음악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날치의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시작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장영규)
-베이스 두 대에 드럼 한대 구성은 신선했습니다. 이번에 사운드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준철 씨는 객원으로 함께 하시다가 정식 멤버가 되셨는데요. "작년엔 객원으로 참여하다 올해 1월 정식 멤버가 됐어요. 베이스를 연주하는 입장에선 즐거워요. 기존의 베이스가 연주할 수 있는 영역의 다른 부분을 건드려주고 있고 두 개의 베이스가 서로 주고 받는 구성이 연주자로서는 굉장히 좋은 경험이죠. 최근 들어 라이브셋에서 멤버들이 신시사이저를 더 많이 연주하고, 타악기 같은 것도 사용해요. 꾸준히 연구하면서 그렇게 하다보니 새로운 음악을 만들 때도 신시사이저가 많이 접목될 것 같아요."(박준철) "구성 면에서 베이스 둘, 드럼 하나 편성을 정하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꼭 고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타악기가 추가되고, 뭐도 추가되면서 7명 안에서 할 수 있는 사운드는 제한 없이 발전해 나갈 것 같아요. 만드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는 거라 고민스런 지점은 없어요. 1집과 다른 음악, 남들과 다른 음악,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어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장영규)
-이전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협업 시너지가 컸는데요. "음반은 같이 하는 건 아니에요. 2집 활동을 하면서 같이 하냐, 하지 않냐에 대해 정해진 건 하나도 없어요. 서로 작업에 호감이 있어 아마 시간이 맞으면 같이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는 했어요. 확정된 건 아니에요. 엄청나게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 실행해가는 건 아니거든요."(장영규) -인디 신과 메인 스트림을 오가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엄청나게 제한돼 있어요. 거진 없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설 수 있는 무대도 없고 방송도 없고. 이날치의 경우는 처음부터 상업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이 있었는데, 기존 상업 음악 신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포맷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이 있었고, 저희가 어쩌다 보니 관심을 많이 받게 됐고, 많은 제안이 들어왔고, 그 제안 안에서 이러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리지 않고 다 했어요. 앞으로도 그런 일들이 들어오면 판단해가면서 할 거예요.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해외를 바라보게 한 거죠."(장영규)
-앞으로 구체적인 활동은 어떻게 되나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만들고 공연 활동을 하면서 듣는 분들이랑 소통하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국내 시장은 길 자체가 막혀있는 것 같아요. (상업적인) 대중음악 안에 포함이 안 돼 있고 밴드라고 하면 다 인디라고 돌려버리는데, 모든 밴드가 인디냐. 그러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인디로 돌려버리고 시장 안에서 제외시켜버리는 상황에서 활동하기가 힘든 거죠. 대신 해외는 밴드 음악이 팝 시장 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음악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니까 음악으로서 음악인으로서 대접받고 활동할 수 있는 시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장영규) -이번 '물 밑'에서 부르시는 '히히 하하'가 이미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수궁가' 만들 때랑 작업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따라하게 만들겠다고 유도하지도 않았고요. 만드는 과정 중 대목에 '히히 하하'가 있었고, 그게 지나갔고, 순간 포착해서 발전시켜보자고 한 거죠. 1집도 마찬가지였고요. 특별함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거겠죠. 음악적으로 1집은, 듣는 분들이 몸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어요. 2집은 그런 생각도 공유하지 않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좀 더 성숙된 음악이라고 느껴집니다. 개성들이 더 발현된, 장르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든데 듣는 분들이 1집에 비해 록적이고 사이키델릭해졌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의도하고 방향을 잡는 건 아니지만요. '히히 하하'는 송희 씨 아들이 연습실에 와서 반응을 보여준 곡이에요. 한곡에 '히히 하하'가 4번 나오는데 첫 번째, 두 번째는 그냥 지나가더니 세 번째에 따라 불렀고 네 번째엔 따라부르면서 몸까지 움직이더라고요. 반응이 온다고 생각했죠"(장영규) "이후에 아들이 '히히 하하'만 찾아요. 히히."(권송희) "유럽에서도 많이 따라 부르셨어요. 하하."(박준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