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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1년 방황했던 선감학원 출신 남편...그럴 수밖에 없었더라"

등록 2022-10-24 15:12:45   최종수정 2022-10-31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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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함항우씨 아내 김모씨

13살에 선감학원 강제 입소돼 탈출한 남편과 결혼해 31년 생활

선감학원 생활 중 매일 저녁만 되면 곡괭이 자루로 맞았던 남편

트라우마 못 이기고 술에 의존하며 31년 내내 아내 때리고 폭언

아내 "남편은 국가 폭력으로 모나게 돼…갈고 닦을 생각에 버텨"

"부모 찾지 못한 남편 위해 1대로 새로운 가족 되자 다짐하기도"

남편 이어 아내와 자식들도 트라우마 생겨…"가족 지원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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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뉴시스] 전재훈 기자 = 지난 22일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피해자 故함항우씨의 아내 김모(62)씨가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2.10.22. [email protected]

[인천=뉴시스]전재훈 기자 = "이럴 수밖에 없구나.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당했으니 어쩔 수 없구나. 남편한테 맞으면서도 불쌍했어요. 너무 불쌍했어요. 내가 아니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이 사람을 내가 바꿔놓으려 했어요. 그 사람은 국가의 폭력으로 모나게 된 돌이에요. 그 돌을 사랑으로 갈고 닦아서 둥글게 만들겠다. 매일 밤 맞으면서도 그 생각만 했어요."

선감학원의 아동 인권침해 피해자 고(故) 함항우씨 아내 김모(62)씨가 기억하는 31년 결혼 생활은 고난의 반복이었다. 선감학원에서 생활하던 시절, 해가 질 무렵이면 하루도 빠짐 없이 곡괭이 자루로 두들겨 맞았던 함씨는 저녁이 되면 불안에 떨었다. 함씨는 어김없이 술을 찾았고, 말리거나 걱정하는 김씨는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다.

김씨는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했지만, 부모를 잃어버리고 한 번도 사랑 받아보지 못한 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남편을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31년 동안 매일 불안한 저녁을 함께하며, 함씨가 쏟아내는 불안과 분노를 조용히 받아주었다.

김씨는 "아예 잠을 안 재웠어요.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고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결혼하자마자 시작된 폭력은 갈수록 강해졌습니다"라면서도 "남편이 선감도에서 지냈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불쌍하고 안 됐다고 느꼈어요. 31년 동안 시달리며 살았지만, 동시에 계속 사랑을 쏟아붓고 싶었고, 모난 부분을 잘 갈고 닦아서 둥글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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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선감학원은 일제가 1942년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 설립한 아동 강제수용소다. 경기도는 1957년 2월 선감학원의 설치 및 보호수용의 근거가 되는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1982년 폐원까지 운영했다. 폐원 전까지 5000여명이 넘는 원아들이 수용돼 구타와 강제 노역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18일 제43차 위원회를 열고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선감학원 운영 주체였던 경기도와 국가에게는 사과와 피해 회복 지원을 권고했다.

함씨는 부모를 잃어버린 채 고아원과 서울시림아동보호소에서 생활하다 13살에 선감학원에 강제로 입소됐다. 강제 노역과 구타에 시달리다 4년 뒤 헤엄쳐 선감도를 탈출했다고 한다. 이후 김씨와 만나 31년간 함께 살았고, 지난 2014년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지난 22일 뉴시스와 만나 "국가 폭력으로 생긴 남편의 트라우마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해소되지 않았다"며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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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선감학원 기록사진. 2019.09.10 (사진 =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함씨는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가족을 찾아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반대로 선감학원에서의 기억은 집요하게 그를 쫓아다니고 괴롭혔다.

김씨는 "남편의 기억을 따라서 소방서와 군부대, 시장이 있는 지역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가족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1대가 되기로 했다"면서 "남편에게 새로운 가족이 돼주고 싶었다. 우리가 1대가 돼서 좋은 가족 문화를 만들자고 얘기하곤 했다. 남편에게 항상 당하고 살면서도 내가 이 사람을 좋게 만들어서 우리만의 좋은 가정 문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함씨는 결혼 직후부터 트라우마를 견디다 못해 술에 의존했다. 김씨는 술에 취할수록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함씨를 말리다 폭행당하는 일상을 겪었다.

김씨는 "결혼 직후부터 폭행이 이어졌지만 이 사람을 사랑으로 보듬겠다는 마음. 모난 돌을 깎아보겠다는 의지가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과거 아픈 경험이 있다는 것도 다 알고 결혼했고요. 비록 남편은 죽었지만, 그 사람 아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또 우리 아이들 올바르고 떳떳하게, 장하게 키워내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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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지난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근식(왼쪽) 진실화해위원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10.20. [email protected]

피해자에게 남은 상처는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함씨가 저녁때마다 불안함을 느껴 가족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반복하자, 마찬가지로 김씨는 저녁만 되면 불안감에 시달렸다. 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소주병만 보면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함씨와 김씨의 자녀들도 함씨가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때가 되면 마찬가지로 불안에 떨었다고 한다.

김씨는 "TV에 나오는 소주병만 봐도 불안해요. 소주병도 싫고 초록색도 싫어요"라며 "누가 어디서 술 먹는 걸 보면 저 사람이 술 마시고 해를 끼칠 거 같고, 무슨 행동을 할 것 같고 두렵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피해자의 가족들에 대한 치유와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이 김씨의 말이다.

"피해자들의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트라우마를 갖게 됩니다. 31년 동안 남편에게 선감학원 얘기를 듣고, 트라우마를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트라우마의 피해자로 살다 보니 나도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그들이 치유받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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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20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 및 위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10.20. [email protected]

함씨는 결혼 전 인천에서 동냥하며 생활할 때 한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이후 그 집을 꼭 사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함씨는 그 집을 샀고, 김씨 역시 현재 그 집에서 살고 있다. 김씨는 "8년이나 지났는데 너무 힘들어요. 그냥 아무 생각 안 해도 집에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나요. 지금도 대문 소리가 나면 '담배를 다 피우고 들어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쯤이면 더 둥글둥글해진 남편과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텐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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