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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①임종도 생리현상도 한 공간에서…인권은 어디에

등록 2023-01-25 05:00:00   최종수정 2023-02-13 10: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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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질병 고통 큰데 열악환 환경 놓여

건강회복해도 트라우마·신체적고통 겪어

"사생활 없는 다인 중환자실은 비인간적"

환자 의식 있어도 병상에서 대소변 봐야

인력 부족에 간호사 1명 중환자 3명 돌봐

중환자실 환경 개선 투자 어려운 저수가

치료 후 증후군 예방 위한 재활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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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뉴시스] 배훈식 기자 =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중환자실을 이용하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지만, 중환자실 운용 체계는 후진국 수준이다. (공동취재사진) 2023.01.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의식 있는 환자들에게 다인 중환자실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바로 옆의 환자가 배변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다.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것을 보고 죽음이 곧 닥칠 수 있다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심지어 장례식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망인과 같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저 조차도 심하게 아프면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중환자를 치료하는 국내 한 상급종합병원 전문의의 고백이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달로 중환자실을 이용하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지만, 중환자실 운용 체계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중환자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중증 질환으로 질병 자체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이처럼 중환자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어렵사리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해도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이나 신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아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중환자들이 인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커튼으로 구획을 나눠 여러 명의 환자가 병실을 함께 쓰는 중환자실 구조다. 중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은 "프라이버시(사생활)가 없는 다인 중환자실은 비인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대다수 병원의 중환자들은 사생활을 보호받기 힘들다. 여러 환자가 중환자실을 함께 쓰기 때문에 옆에 있는 환자가 배변 활동을 하는 것도 참아야 한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심폐소생술을 목격하기도 한다. 중환자실은 각종 검사가 지속적으로 시행돼 환자복을 제대로 착용하기 어려워 커튼 사이로 신체가 노출되기도 쉽다.

다인 중환자실은 '중환자 치료 후 증후군(Post Intensive Care Syndrome·PICS)'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중환자 치료 후 증후군이란 중환자실 퇴원 후 신체가 허약해지거나 불안이나 우울감을 느끼고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중환자실을 퇴원한 환자의 약 3분의 1은 퇴원 후 1년에서 5년 이상 인지기능 저하, 불안,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근육 약화, 일상활동 장애 등을 경험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박성훈 대한중환자의학회 표준화 이사(한강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중증 폐렴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장기간 받는 환자의 경우 장기간 누워있게 되고, 진정제와 신경근차단제를 쓰게 되면 근육 손실이 생기고, 고령 환자는 인지 장애까지 생기게 된다"면서 "이런 경우 퇴원을 하더라도 누워서 지낼 가능성이 크고, 인지 장애가 지속될 수 있어 사회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할수록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패혈증 환자도 마찬가지다. 패혈증 환자 중 3분의 1이 사망하지만, 생존자의 3분의 1에서는 수개월 동안 일상생활에 장애를 겪는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대부분 1인실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병원은 1인실로 운영하면서 가족들의 중환자실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병원 중환자실도 1인실이다. 1인실은 중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음과 빛에 노출되면서 겪는 수면장애로 인한 섬망(일시적인 혼돈과 망상, 불면증, 기억력 저하 등을 보이는 뇌기능 장애)도 줄일 수 있고, 재활치료도 더 잘 이뤄져 치료의 질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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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AP/뉴시스]  1인실은 중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음과 빛에 노출되면서 겪는 수면장애로 인한 섬망(일시적인 혼돈과 망상, 불면증, 기억력 저하 등을 보이는 뇌기능 장애)의 발생도 줄일 수 있고, 재활치료도 더 잘 이뤄져 치료의 질도 높아진다. 사진은 중환자를 돌보는 프랑스 마르세이유 라 티몬병원의 중환자실 의료진. (사진= 뉴시스DB) 2023.01.25. 

인력 부족도 중환자가 인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간호사 1명당 중환자 1~2명을 돌보는 것이 적정하지만, 현재 국내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중환자 3명(실제 환자를 보지 않는 책임간호사·수간호사 등을 제외)을 돌보고 있다. 치료 난이도가 높은 중증 질환 환자가 많은 상급종합병원도 마찬가지다. 지방 중환자실의 경우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돌보는 경우도 있다.

정재승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간호등급(간호사 1인당 병상수) 1등급이 1.5 이상 2.0미만인데 간호사 1명이 중환자 2명을 돌보는 경우도 거의 없다"면서 "가령 간호사 2명이 한 환자를 부축해 화장실에 가게 되면 그 사이 나머지 환자들은 무의촌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간호 인력이 부족해 의식이 있는 환자가 병상에서 대소변을 보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외상외과 전문의B는 "대변을 보고 싶은 중환자가 의식이 있고 보행이 가능하다면 응당 화장실에 가야 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간호사가 '그 자리에 싸시면 치워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의 경우 간호사 1명당 환자 2명 돌보고 있다. 특히 미국 매사추세츠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중환자실 간호인력 기준이 법으로 규정돼 있다.

중환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는 또 다른 원인은 병원이 중환자실 환경 개선에 선뜻 나서기 힘든 낮은 수가(진료비)다. 병원이 중환자실을 1인실로 바꾸려면 더 넓은 공간은 물론 치료 장비와 간호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중환자가 늘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구조여서 인력·장비 등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박 교수는 "과거보다 수가가 많이 올라갔지만, 여전히 수익이 크지 않아 투자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환자실 원가 보전율이 60% 정도여서 환자를 치료할 때 원가가 100만 원이 든다면 치료의 대가로 받는 금액은 60만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유정암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1인 중환자실 내에 보호자가 앉아 있을 수 있는 소파와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등이 있다"면서 "하지만 국내의 경우 저수가여서 중환자실을 전부 1인실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화장실 등을 갖춘 1인 중환자실을 만드려면 병상 수를 줄여야 해 병원이 운영될 수 있을 정도의 수가가 뒷받침돼야 한다. 

중환자 치료 후 증후군을 예방 하려면 적극적인 재활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 교수는 "중환자실에 하루라도 입원한 환자가 원래 직장으로 복귀할 확률은 30%가 채 되지 않지만 현재 중환자 재활 수가가 없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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