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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우크라인 올랴·올가씨 "끔찍한 1년…끝까지 버텼으면"

등록 2023-02-24 07:00:00   최종수정 2023-02-27 09: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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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1년…체한 우크라인 올라씨 인터뷰

"한국 오자마자 전쟁 시작…가슴 타들어가는 불안함"

"한국에서 일하며 경제적 지원…수입의 60%↑ 전달"

"퇴근 후 펑펑 우는 일상…불안 장애로 나쁜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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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체한 우크라이나인 모임 한 회원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인터뷰에 응한 올랴씨는 얼굴 공개를 꺼려했다. 2023.02.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전재훈 기자 = "하루는 동네 가게에 주문해둔 물건을 가지러 간 아버지가 '아무도 없다'며 연락이 왔어요. 주인에게 전화해보니 '공습경보가 울렸으니 다음에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빠가 공습경보를 듣지 못한 채 거리를 활보한 거죠.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전쟁터에 둔 외동딸에겐 매일이 지옥입니다. 이 지옥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어요."

올랴(29)씨는 서울의 한 기업 해외전략팀에서 근무하는 체한 우크라이나인이다. 그는 힘들게 뉴시스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고향 우크라이나 서부지역 중심 도시인 르비우. 동부지역 전장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최근 러시아의 드론 대공습으로 포격 피해를 입으면서 전쟁터가 됐다.

최근 들어 올랴씨에겐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왕십리 자취방으로 퇴근한 뒤면 홀로 집 안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회사 등 외부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불안감을 꾹꾹 누르지만, 집에 돌아온 뒤엔 전쟁으로 부모님과 친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엄습한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겐 더욱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한다.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을 맞은 가운데,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은 현지인 뿐만 아니라 국내에 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올랴씨는 지난 22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쟁 1년 동안 가슴이 타들어 가는 불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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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무트=AP/뉴시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주민들이 대피소에 모여 있다. 2023.02.21.

그는 가족을 영영 볼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일 고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을 해 가족들에게 돈이나 필요한 물건을 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아무 생각 말고 열심히 살자"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올랴씨는 "왜 가서 함께 사우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가족과 친구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전기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케어가 필요하다"며 "필수적인 부분에 대한 소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크라이나를 위해 쓰고 있다. 수입의 60~7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물가는 4배 이상 뛰었고, 전기 등 공공재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그는 고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지만, 인터뷰 중에도 거듭 눈물을 흘렸다.

올랴씨는 "지난 7일이 아버지 생신이었다. 보통 집에 모여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전쟁 이후로는 영상통화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슬퍼했다.

이어 "만약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들 곁에 없었다는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며 "이런 끔찍한 경험을 빨리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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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트셔=AP/뉴시스] 지난 1일(현지시간) 영국 윌트셔의 솔즈베리 평원에서 훈련 중이던 우크라이나 여군 병사가 조국 얘기를 하던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호주군이 영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신병 훈련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날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 제임스 클리버리 영국 외무장관,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 등이 훈련장을 찾았다. 2023.02.02.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온 올가(26)씨도 전쟁터에 있는 가족들 생각에 불안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올가씨는 "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불안 장애가 생겼는데, 나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반복해서 생각한다"며 "가족 생각만 하면 가슴에 큰 구멍이 나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부모님이 머무는 지역에 공습 경보가 울렸다는 뉴스는 1년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다.

올가씨는 "포격, 사망, 고문, 강간, 학살 이런 끔찍한 뉴스의 연속"이라면서 "키이우가 최전선이었을 때는 한 시간에도 몇 번씩 가족에게 연락하곤 했다. 엄마는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는 미사일을 자주 봤다고 한다. 연락이 되지 않을 때는 연락이 될 때까지 계속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나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올랴씨는 "1년이란 시간 동안 잘 버텨왔으니 끝까지 버텼으면 좋겠다. 가장 무서운 건 전쟁이 패배로 끝나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는 앞으로가, 하루가, 1분이, 1초가 없을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우크라이나를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올가씨도 "전쟁이 끝나면 한국인 남자친구에게 우크라이나를 구경시켜주고 싶다. 키이우 독립광장을 산책하고, 르비우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맑고 평화로운 우크라이나의 하늘이 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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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우=AP/뉴시스] 지난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한 여성이 러시아군과의 전투 중 전사한 아들의 장례식 도중 아들의 유해가 매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열하고 있다. 2023.02.08.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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