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 연예일반

[클로즈업 필름]현실이라는 하드보일드…'토리와 로키타'

등록 2023-05-11 06:16:00   최종수정 2023-05-15 10:32:47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인간과 세계를 보는 저 예리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 함께 관계 맺고 살아 가야 하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윤리에 대한 치열한 고민. 게다가 더 화려할 수 없는 수상 경력과 거장이라는 찬사까지. 70대가 된 다르덴 형제 감독과 그들의 영화에는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사적인 고뇌와 시대가 만들어낸 공적인 의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토리와 로키타'에는 현인(賢人)의 지혜는 없고 범인(凡人)의 무력감이 서려있다. 그건 벨기에가 떠안고 있는 문제이자 유럽과 전 세계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를 일개 영화감독이 어찌할 수 없다는 고백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일단 지켜본다. 그것이라도 하는 게 최소한의 의무라는 듯이.
associate_pic

소년 토리(파블로 실스)와 소녀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아프리카 베냉에서 벨기에로 건너온 난민. 가족과 헤어져 홀로 타국에 오게 된 이들은 상대에게 의지하며 마치 친남매처럼 서로를 돌본다. 문제는 토리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체류증을 받았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했다는 것. 로키타는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서라도 체류증을 얻고 베냉에 있는 엄마와 친동생들에게 안정적으로 돈을 보내주기 위해 마약 조직 일에 더 깊숙이 얽히게 되면서 토리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 벨기에로 넘어온 뒤 하루도 헤어져 본 적 없는 두 아이는 조직원들을 속이고 연락을 이어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며 위기에 빠진다.
associate_pic

'토리와 로키타'는 비정해서 냉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불필요한 낭만을 전시한 적이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전에 없을 만큼 냉혹하다. 이건 연출 스타일이 변한 게 아니라 난민 문제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토리와 로키타'는 앞날을 긍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희망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지 않고, 없으면서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게 이 영화의 윤리라면 윤리다. 다르덴 형제 감독은 소외된 이들을 그린 영화를 반복해서 만들며 개인에서 공동체로 공동체 내에서 공동체 경계 혹은 밖으로 시선을 넓혀 왔다. '토리와 로키타'는 그 마지막 단계에 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다르덴 형제 감독은 아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탄식하는 듯하다.
associate_pic

이런 시각은 형식으로 발화된다. 먼저 인물. '토리와 로키타'엔 공권력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전무하다. 남매를 돕는 사람들도 사실상 나오지 않는다. 토리와 로키타가 있고, 두 아이를 착취하는 이들만 있다. 그게 현실이라는 듯이 말이다. 다음은 동선. 토리와 로키타는 항상 길 위에 있다.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뛰어야 한다. 그게 그들의 처지다.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을까 긴장해야 하고 혹여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마음 졸여야 한다.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야 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내내 위태롭기 만하다. 이번엔 카메라. 카메라는 이들을 보고 있다. 그저 바라보고 있다. 실상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듯 열심히 본다. 다만 목격하는 데 그치며 개입하는 법은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associate_pic

그리고 마지막은 연대를 표현하는 방식. '토리와 로키타'엔 시혜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연대,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끌어안거나 중심이 외부를 포용하거나 성년이 미성년을 지키는 식의 움직임이 없다. 토리와 로키타는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된다. 이 세계에서 최약자로 분류되는 두 인간의 이 지극한 연대는 고귀해보이기까지 하나 동시에 한없이 가냘퍼 끊어지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토리와 로키타'는 이 관계의 이면을 가감 없이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드러내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아마도 이건 일단 알아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제스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associate_pic

이제는 조금 감상적일 때가 됐다고 여겨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도 다르덴 형제 감독은 이성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토리의 짧은 대사 몇 마디로 다시 한 번 정곡을 찌른다. 모든 비극은 체류증이라는 서류 하나 때문이었다고. 그 종이 쪼가리 하나 앞에서 남매의 사랑은 무기력했다고. 토리와 로키타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게 그들의 연대가 아니라 체류증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이제 토리와 로키타가 함께 부르던 노래가 떠오를 것이다. "장터에서 동전 두 개에 아버지는 생쥐 한 마리를 샀네/그런데 고양이가 와서 생쥐를 먹어버렸네/그런데 개가 와서 고양이를 물었네/그런데 나무 지팡이가 나타나서 개를 때렸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