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교사 사명감' 타령만…위기학생 홀로 감당에 지쳐
[위기 학생, 함께 돕자③]목포 이음이의 사례초등 4학년인데 1학년 수준 학력…수업 방해교우관계도 나쁘고 아버지 암 투병에 생활고담임교사 홀로 도와야 하지만 사명감도 한계학교 자원에 한계…온 마을 도와야 극복 가능지역사회 도우며 위기 극복…"혼자서는 못 해"생활고, 정신 건강, 기초학력 저하, 학교폭력. 우리 학생들이 겪는 위기는 다양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그럼에도 '골든 타임'을 놓치고 안타까운 비극을 겪는 학생들이 끊이지 않는다. 위기에 놓이기 전에 찾고, 모두가 함께 돕는 새로운 안전망이 필요하다. 국내 최대 민영뉴스통신사 뉴시스와 교육부는 공동 기획 '위기 학생, 함께 돕자'를 통해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을 대안으로 소개한다.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전남 목포시 원도심에 위치한 A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학교에 결손가정에 살다 보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습관과 기초학력이 미진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 중에서 '이음이'(가명)은 가장 까다로운 학생으로 꼽았다. B 교사는 4학년 담임 첫날 다른 교사에게 경고를 들었다. "아이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특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겪어 보면 알게 된다." B씨는 곧 이음이가 복잡하고 어려운 행동을 보였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말을 걸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 수업을 방해했다. 마음대로 교실을 돌아다녔고, 5분도 되지 않아 상담실과 보건실, 화장실 가기를 반복했다. 읽고, 쓰고, 셈하기는 4학년임에도 1학년 수준에도 못 미쳤었다고 B씨는 전했다. 교우관계도 좋지 않았다. 개학 첫날부터 몸싸움을 벌였고 고학년과 싸워 몸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B 교사는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고 어머니는 베트남에서 와 한국어가 서툴렀다. 30일 교육부에 따르면 B 교사가 '이음이'와 같은 복합 위기 학생을 마주하면 현행 제도상 문제 행동 아이를 1차적으로 담당하는 교사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교사에 사명감을 강제했던 시절은 흘러간 것처럼 보인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지난 4월 진행한 '교사상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교사는 '학생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성직자'라 답한 응답자는 0.8%에 불과했다. 성에 안 차면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부모, 말을 듣지 않아도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제 학생에 교사들은 지쳐갔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이 알려지자 교사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퍼지고 2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로 꼽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조사에서 '교직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23.6%로 역대 최저치였다. 그렇지만 이음이와 같은 학생을 가장 먼저 찾아낼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교사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위기 학생을 가정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에서 간접적으로 발굴할 수도 있지만 현행 복지 제도는 신청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교사들이 사명감을 잃지 않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보다 두텁게 마련돼야 학교에서 위기 학생들을 발굴할 동력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학생의 학업을 방해하는 환경 요인들을 끊지 못하면 '맞춤형 교육', '공교육 혁신'도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에도 몇 년째 속을 썩이는 문제행동 학생이 있었는데 지난해 담임은 우울증에 걸리고 열흘 간 병가를 냈다"며 "설령 문제 행동을 극복하는 단서를 찾더라도 학교의 힘으로 부족한 경우가 있어 외면하고 지나갔을 것"이라고 했다.
B 교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교실에서는 이음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했고, 교내 위(Wee) 클래스에서 상담을 받게 했다. 그러던 중 암 투병을 하던 이음이 아버지는 결국 올해 6월 중순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가족들은 생활고에 상실감까지 안게 됐다. 학교에서 장례 비용과 상담 비용, 생활비 지원을 해 주는 데 한계가 있다. 이음이는 B 교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서럽게 울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여기서 끝났다면 이음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거나 더 심각해 졌을 수 있다. 다행히 이음이는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목포교육지원청, 목포시가족센터에서 이음이를 지원하기 위한 회의를 여니 B 교사를 비롯한 이음이 누나, 동생의 담임교사가 참석해 달라고 했다. B 교사가 참석한 회의에는 교육 당국과 가족센터, 복지센터, 청소년기관, 장애인 기관 등 15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이음이 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유됐다. 참석자들은 각자가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고 지원 절차를 이야기했다. B 교사는 "이음이의 어려움을 더 잘 알게 됐고, 세심하게 살피고 도와주지 못해서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회고했다. 회의 이후 이음이는 방과 후에 정서적 상담과 학습 지원을 받았다. 야간에는 돌봄을 받았고, 가정방문을 통해 생필품을 지원 받았다. 주말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의 장례 비용도 지원됐고 심리 상담도 이어졌다. B 교사는 이음이가 올해 9월 초 읽기, 쓰기, 셈하기 간이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고 전했다. 가족도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다. B 교사는 "혼자서는 해 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음이의 이야기는 실화다. 목포교육지원청이 교육부에 제출한 다문화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위기 극복 사례를 정리한 것이다. B 교사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이해했다고 전한다. 위기 학생을 돕기 위해 온 마을이 두텁게 지원하는 체계를 누군가의 사명감에만 맡겨야 할까. 이제는 사회 안전망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