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 닮은 필립 파레노 "작업 하나하나에 내 몸 연장"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리움미술관에서 보이스(VOICES) 개인전부유하는 물고기부터 움직이는 벽까지9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총 40점 공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부유하는 물고기와 창문에서 쏟아지는 석양빛이 물든 전시장은 거대한 어항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물고기 풍선'일 뿐인데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이상하게 전환 시킨다. 26일 리움미술관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구현한 필립 파레노의 '보이스(VOICES)'전이 개막했다. 전시 제목 '보이스'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목소리’다. ‘다수의 목소리’는 작가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요소이며 작품과 전시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목소리(들)이다. ‘다수의 목소리’를 하나의 공간으로 집결시키며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시켰다.
199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파레노의 작품세계를 포괄하는 서베이 전시로 리움미술관 전체 공간에서 선보이는 미술관 최대 규모의 전시다. 야외 설치 대형 타워 '막(膜)'(2024), '∂A'(2024), '움직이는 조명등'(2024)을 비롯해 '차양' 연작(2014-2023), '마릴린'(2012) 등 총 40여점을 공개했다. 전시장은 난장판처럼 펼쳐졌다.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기술을 통해 전시를 거대한 자동 기계로 변신시켰다. 유령이 치는 듯 피아노가 소리를 내고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가 AI 캐릭터 ‘∂A’(델타에이)소리로 나오는가 하면 마치 건물의 벽면이 떨어져 나와 움직이는 듯 이동하고, 극장 간판 같은 불빛이 번쩍이며 섬광을 일으킨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상상과 현실이 중첩된 공간을 만들어낸 필립 파레노는 "미술관은 닫혀져 있는 공간이다. 외부 세계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있는, 비싼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일종의 버블 같은 공간에 틈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도 내 작품을 통해 틈을 내거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마음껏 느껴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부유하고 둥둥 떠다니는 분위기의 작품에 대해 그는 "나도 떠돌아다니는 방황하는 사람"이라며 "요리를 제외하곤 항상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이 완결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미술은 완결되지 않은 incomplete한 상태에 있다고 보고 그런 점을 받아들인다"는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바꾼 변화들을 연결 시키는 것으로 내가 바꾼 작업들은 마치 작업 하나하나에 내 몸이 연장된 것 같은 연결된 감각을 느낀다"고 했다. 작가는 개별 작품을 집결해 선보이는 자리가 아닌 통합적인 경험의 장으로 풀어냈다. 사진, 그래픽 포스터,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사건의 순서와 연동되는 거대한 무대처럼 구성했다. 인공지능, 디지털 멀티플렉스 기술이 혼재한 작업이지만 AI에 의존하거나 기계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와 기계 시스템은 그저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작가로서 가지는 도구 박스 중의 하나"라고 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조종 되는 것과 조종하는 것, 실존하는 것과 허상 간에 유사 인간의 시선과 장소에 대한 기억 속 재현은 필립 파레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주제다. 영화배우 브루스 윌리스를 닮은 작가는 기계 장치가 난무한 작품과 달리 감상적인 면을 보였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하늘을 보면서 공상하는 것 같은 시간이 나에겐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 망각하고, 다시 돌아오는 그런 순간 그 마법적인 순간을 좋아한다"면서 "이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가 생성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리움미술관은 어쩌면 쉽고 어쩌면 복잡한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필립 파레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들어보고, 큐레이터 토크에서는 '보이스(VOICES)'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이번 전시를 심도 있게 소개한다. 또한, 니콜라 부리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의 강연에서는 90년대 활발한 활동을 보인 작가들을 살피며 필립 파레노를 조망한다. 이외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는 작가 연구 세미나가 월 1회씩 열린다. 더불어 M2 2층에서는 작품 '현실 더 이상 안돼(후반부)'(1993/2009)와 '말하는 돌'(2018)이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선보인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어린이 대상 '그림자 인형극 워크숍'이 열리며, 매주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한 자율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참여 신청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전시 관람은 2주전부터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필립 파레노 개인전 관람료는 일반 1만8000원. 전시는 7월7일까지 열린다.
1964년생으로 프랑스에서 거주하고 활동한다. 에스더쉬퍼 갤러리와 글래드스톤 갤러리 소속 작가로 현재 현대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영상,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 형식에 주목한다.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예술작품과 전시 경험을 재정의하는 유기적인 방식을 탐구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이탈리아, 1993, 1995, 2003, 2007, 2009, 2011, 2015), 리옹 비엔날레(1991, 1997, 2003, 2005), 멘체스터 국제 페스티벌 등에 참여했다. 작품은 퐁피두센터, 루마 아를, 21세기 가나자와 미술관, 파리 근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모던, 아이리쉬미술관, 반아베미술관, 와타리현대미술관, 워커아트센터 등에 소장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