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짙은 그림자, 불편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리뷰]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창녀! 그 오스트리아 여자! 그녀에게 파멸을 / 프랑스의 수치야 / 사치와 낭비와 밤마다 그 짓거리 / 왕도 그녀의 노예 사악한 마녀 / 쫓아내자! 몰아내자!"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중 '운명의 수레바퀴') 그 시절 프랑스는 배고픔과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에 거액을 지원하다 국고가 바닥났다. 국민들은 가혹한 세금으로 고통 받았다. 굶어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증오할 대상이, 사냥할 마녀가 필요했다.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대." "백성들이 굶어죽는데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매일 밤 파티가 열린대." 어딘가에서부터 왕비에 대한 거짓 소문이 시작됐다. 그리고 입에서 입으로 퍼졌다. 눈덩이처럼 커진 소문은 군중들을 움직였고,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왔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가장 높고 화려했던 자리에서 가장 비참한 자리로 떨어진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를 인간적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그녀에 대한 소문은 대부분 실체가 없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 중 한 구절이지만 마치 왕비의 말처럼 선전됐다. 희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의 경우 재판을 통해 진범이 가려졌지만 아무도 왕비를 믿지 않았다. 인쇄된 소문이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가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치명타를 입었다. 소문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색정광, 동성애, 근친상간까지….
극은 왕비의 화려함 속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본다. 김소향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하며 온실 속 화초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 여성이자 엄마로서의 사랑과 의리를 보여준다. 극의 초반에서는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한, 마지막에는 처연하고 분노에 찬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옥주현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대척점에 선 허구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연기,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며 극적 효과를 더한다. 가난한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하고, 사람들을 선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혁명의 어둡고 짙은 그림자는 시종일관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권력을 노리는 오를레앙 공작이 마그리드 아르노와 거리의 시인 자크 아베르를 시켜 거짓소문을 퍼트리고, 배고픈 서민들은 돈을 받고 시위에 참여한다. 대중들은 너무나도 쉽게 선동에 넘어간다. "난 원해, 지배하길 / 너희는 돈을 원하고 / 난 그 돈을 줄테니까 / 무너뜨려 왕을, 그게 우리의 목적 / 그래 이건 혁명이지 / 왕비를 공격해 / 내 뜻대로 / 군중을 선동하라 / 그러면 나의 세상"('나는 최고니까' 중)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창조해낸 이 작품은 긴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5월26일까지 서울 신도림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