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25학번, 수시모집 완료…내년 강의실 파행 불가피[해넘기는 의정갈등②]
30일 내년도 의대 정시모집 인원 확정"의대생 두 배 넘게 늘어 교육질 하락""해부학 관광 실습되고 유급생 늘 것"
2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올해보다 1497명(약 50%) 늘어난 4610명이다. 각 대학은 오는 30일까지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이월한 인원이 포함된 정시 모집 인원을 확정해 공지한다. 의료계에선 내년에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한 의대생 3000여 명이 복귀한다 하더라도 신입생 4610명까지 포함해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명 이상이 예과 1학년 수업을 받게 돼 제대로 된 의학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교수진과 교육 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대생이 단번에 급격히 늘면 의대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결국 환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의대 교육 과정은 이론 수업 위주인 예과(2년)와 실습이 주를 이루는 본과(4년)로 나뉘어진다. 한 예로 해부학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되는 기초의학 과목 중 하나로, 현재 많은 의대들이 해부학 실습을 본과 3학년이 아닌 예과 2학년부터 시작한다. 실습용 시신 확보가 쉽지 않은 가운데, 학생들은 대개 6∼8명씩 조를 짜서 해부용 시신(카데바)으로 실습해왔다. 내년도 의대 정원이 예정대로 확대되면 특히 의대 정원이 크게 늘어난 지방 의대의 조별 실습 인원이 3~4배 이상 늘어 해부학 실습이 '관광실습'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장환 충북대 의대 전 심장내과 교수는 "현재 카데바 한구당 실습 인원이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한 두 명만 늘어도 뒤에 있는 학생들은 카데바의 인대가 전혀 보이지 않거나, 간을 싸고 있는 조직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해부학 실습을 마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의대생이 급격히 늘어나면 다양한 실습이나 교수가 중재자 역할을 하고 의대생 6~7명이 조를 이뤄 환자를 진단하는 수업 등이 어려워지면서 유급생 비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한국의학교육학회 이사)는 "정원이 급격히 늘어난 대학들은 현재 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격렬히 저항하고 있고 실제 교육이 불가능하다"면서 "현재 5% 수준인 의대생 유급 비율이 10~20% 정도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1981년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의대들은 졸업 정원보다 신입생을 30%가량 더 뽑았지만 의학 교육 인프라를 준비하는 기간이 6개월 정도로 짧았던 탓에 임상 실습 부실 등 부작용을 겪었고 유급생이 급증했다. 1984년 의대에 입학한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경상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졸업정원제 입학생들의 유급으로 1987년 본과 1학년 278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했고, 해부학 실습은 시신이 부족해 겨울로 미뤄졌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했지만 동기의 50% 정도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같은 해부학이라 하더라도 전공이 조금씩 달라 많은 기초 교수가 필요하고, 의대별 편차도 크다"면서 "최근 수년 전부터 의대 교수를 뽑으려 해도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연봉으로 뽑기 어려운 상황에서 급격한 증원으로 (교수 수급에)치명타를 입었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은 보통 진료, 교육, 연구를 병행하지만 연봉은 상대적으로 낮아 기존 교수들은 병·의원을 개원하고, 젊은 의사들은 교수직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배출되는 의대 졸업생이 병원에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로서 수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도 의문이 제기된다. 의대생들이 임상 실습을 하려면 사전에 교육을 담당할 임상 교수와 실습 환경을 갖춘 병원을 확보해야 한다. 권 교수는 "가령 정원이 4배 늘어나 한 해 200명 가량으로 증원된 국립대 의대 산하 대학병원에서는 병원 규모가 제한돼 있어 졸업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다"면서 "결국 실습이 축소되거나 관광 실습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의대 증원은 의료체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사 양성 시스템은 의대 6년, 전공의 과정인 인턴(1년)·레지던트(3~4년)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따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어서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면서 내년에 배출되는 신규 의사는 올해보다 약 3000명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도 대다수 복귀하지 않고 있어 전문의 배출도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직면했다. 최근 대한의학회가 전문의 시험 원서를 접수한 결과 내년 초 시행 예정인 전문의 자격 시험에 응시하는 전공의 수는 566명에 그쳤다. 신규 전문의 배출이 예년의 5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3000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7500명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후유증은 10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의사들이 평생 환자들을 진료하게 돼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역량 있는 의사 배출에 필수불가결한 양질의 의학 교육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