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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이토록 화려한 속죄와 구원 '에밀리아 페레즈'

등록 2025-03-12 06:02:00   최종수정 2025-03-12 16: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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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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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3월12일 공개)는 청년이 만든 영화 같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여서 결국 수긍하게 하고, 이래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느냐며 온갖 수단을 다 갖다 쓴다. 마약과 살인, 사랑과 배신, 죽음과 부활, 속죄와 구원을 뮤지컬과 누아르와 텔레노벨라를 뒤섞어 엮어 간다. 최대한 화려하게, 그러면서 최대한 어둡게, 또한 최대한 비극적으로. 이 거침 없는 보법은 처음엔 어색해보여도 결국 다음 스텝을 기다리게 한다. 이 호전성 덕분에 1952년생 자끄 오디아르(Jacques Audiard)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이번에도 결코 낡는 법이 없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에밀리자 페레즈'는 아마도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성확정 수술을 받으려는 멕시코 카르텔 마약왕과 이 계획을 비밀리에 실행하게 된 변호사라는 설정만으로도 이미 영화 같은 냄새를 풍기는데다가 이 이야기를 다른 장르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화법이 쉬울 수밖에 없는 뮤지컬로 풀어내 진입 장벽을 최대한 끌어내렸다. 러닝타임 133분으로 짧다고 할 순 없지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에 춤과 노래가 어우러져 있어 지루할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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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2500만 달러 밖에 들이지 않은 '에밀리아 페레즈'는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한 화려하다. 멕시코·스위스·영국 등 다양한 나라를 오가며 이야기가 펼쳐지고, 마약왕 델 몬테의 세계와 변호사 리타의 세계 그리고 에밀리아 페레즈로 다시 태어난 델 몬테와 그와 다시 만나게 된 리타가 만들어 가는 세계가 교차·전환된다. 명암을 강조하고 원색을 부각하며 클로즈업을 과감하게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배우 조이 살다나의 춤과 노래는 이 영화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떠받든다. 배우가 되기 전 무용을 했던 그는 연기라는 게 정신노동이면서 동시에 육체노동이라는 걸 그 화려한 춤사위로 증명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각 장르의 핵심만 추출·압축한 듯한 이야기로 '에밀리아 페레즈'는 또 한 번 풍성해진다. 가망 없이 타락한 세계, 직업 윤리를 고민하는 변호사, 그 세계를 떠나 손을 씻으려는 조직의 보스는 범죄 영화의 전형이다. 내연 관계와 복수, 새로운 사랑과 의외의 우정은 치정극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과 극적인 신분 변화는 텔레노벨라의 공식 중 하나다. 오디아르 감독은 전작들에서 누아르·로맨스·스릴러·드라마 등 각종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쌓은 노하우를 새 영화에서 한 번에 풀어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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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디아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감각을 더해 놓은 이 영화는 그러면서도 오디아르 감독의 작품 세계를 구성해온 키워드를 놓치지 않고 챙겨 넣음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리아 페레즈'가 오디아르의 영화라는 걸 분명히 한다. 이건 결국 청산과 부활, 속죄와 구원의 이야기. 오디아르 감독은 아버지의 길과 어머니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감옥에 간 뒤 점차 범죄에 절여져가는 한 청년(예언자), 다리를 잃은 여자와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남자(러스트 앤 본)의 이야기 등으로 이 테마에 관해 반복해서 풀어낸 적이 있다.

다만 '에밀리아 페레즈'는 앞서 언급한 오디아르 감독 전작들에 비해 서사를 과감하게 펼쳐내지 못한 채 적당한 선에서 멈춰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최악의 범죄자에서 최선의 사회운동가로, 가해의 상징에서 피해의 대변인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돌아선 에밀리아 페레즈에게서 인간적 고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건 이 영화가 택한 화법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해도 약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리타를 포함해 일부 주요 캐릭터를 드러내는 방식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되는데, 배우들이 보여준 빼어난 연기를 생각해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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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배우로 꼽히다가 과거 소셜미디어에서 쏟아낸 각종 혐오 발언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해버린 칼라 소피아 개스콘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히기 어려운 감성과 카리스마로 관객을 매료한다.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 벅찬 환희, 몰려온 회한과 함께 자기 정체를 고백하고마는 그 비탄엔 이 영화가 활용하는 그 모든 기교로도 닿을 수 없는 진실이 담겨있는 것만 같다. 애초에 실제로 트랜스젠더인 그만큼 페레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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