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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그 어둠 우릴 덮쳐도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등록 2025-04-24 05:58:00   최종수정 2025-05-12 0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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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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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고요하고 점잖다고 해서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4월23일 공개)이 소심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인도영화로는 1994년 '스와힘' 이후 30년만인 2024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그 성취를 그저 행운으로 거머쥔 게 아니란 걸 증명한다. 법석 없이 그윽하게 야심을 실현해내는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예리함과 대범함은 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이미 여느 영화로는 도달하지 못 할 경지로 이끈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처지를 비슷한 많은 사람들의 사연으로, 이 사연을 다시 도시의 분위기로, 그 분위기를 한 세계의 광경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한 사람은 물론 모든 세계를 휘감은 듯한 고독과 공허 속에서 기어이 빛을 찾아내 그 숱한 어둠을 견딘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 각기 다른 세대 세 여성의 이야기다. 프라바는 아버지가 점찍은 남자와 얼굴 몇 번 본 뒤 결혼했고, 남편은 혼인 직후 독일로 일하러 가버렸다. 그 남자는 아마도 아내를 잊은 듯하다. 프라바는 남편과 통화한지 1년이 넘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아누는 비밀 연애 중이다. 집에선 결혼을 재촉하지만 그는 전혀 생각이 없고, 게다가 지금 만나는 남자는 이슬람교도다. 프라바와 아누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의 조리사인 파르바티는 20년 넘게 산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건물주가 임대 계약 관련 서류가 없다는 걸 꼬투리 잡아 법적으로 그를 압박하는 것.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은 결혼해서 분가시킨 그는 자식에게 신세 지기 싫기에 당장 거리에 내쫓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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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 출신인 세 여성이 뭄바이에 일하러 와 짊어지게 된 적막과 고통을 조금씩이나마 공유하고 위로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연대와 지지에 관한 영화로 부르는 건 당연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프라바는 감춰온 속마음을 파르바티에게 그리고 아누에게 털어 놓는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아누의 사랑을 지지해주는 건 결국 프라바와 프라바티다. 프라바와 아누는 결국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간 프라바티를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해 이사를 도와 그의 고향으로 함께 간다. 세 여자가 나란히 앉아 칠흑 같은 바다를 바라볼 때, 프라바를 흠모하는 의사 마노즈가 쓴 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밝게 타오르는 이웃집의 불빛. 난 그 빛을 보며 밤에도 온기를 느껴요."

여기서 만족했다면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평범한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데 그쳤겠지만, 카파디아 감독은 그들의 스토리에 인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을 압축해 이 작품을 전진시킨다. 프라바의 단절된 관계와 아누의 금지된 사랑엔 젠더와 종교가 인도의 주요 정치 이슈 중 하나라는 게 함축돼 있다. 재개발 문제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프라바티의 사정으로 인도 경제 상황을 꿰어내고, 남자친구 시아즈보다 성(性)에 더 적극적이고 프라바보다 더 진취적으로 인간 관계를 형성해가는 아누의 모습에선 극도로 보수적인 인도 사회·문화의 진보가 감지된다. 카파디아 감독은 세 여자의 사연을 개인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사회 문제로 치환해 한 시대의 단면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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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와 그들이 사는 세계에 관해 얘기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뭄바이라는 도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뭄바이의 첫새벽과 그 속에 사람들을 담아낸 긴 패닝 쇼트(panning shot)로 문을 여는 이 영화는 프라바·아누·프라바티의 삶을 매번 대도시 한가운데로 부러 데려다 놓는다. 그건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이기도 하고, 저마다 인생이 정신 없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이기도 하며, 인공 불빛만이 가득한 창문 앞이기도 하다. 그렇게 카파디아 감독은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를 찬미하지도 경멸하는 법도 없이 그저 느끼려는 듯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람들은 뭄바이에 대해 말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것 같다"고, "고향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덧없음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프라바·아누·프라바티가 그렇게 산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려는 것 같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프라바·아누·프라바티는 서로를 인정한다. 그들은 뭄바이를 인정한다. 프라바는 마노즈의 시를 인정한다. 아누는 시아즈의 나약함을 인정한다. 프라바티는 고향의 바다를 인정한다. 그러나 프라바를 버린 남편을, 아누를 옭아매는 부모를, 프라바티를 몰아낸 건물주를 인정할 순 없다. 빛을 담은 이 영화는 그래서 빛이 아닌 그들을 한 장면에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빛이 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프라바는 선언한다. "이러지 마요.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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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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