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씁쓸하다, 이 배신의 맛 '소주전쟁'
영화 '소주전쟁'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소주전쟁'(5월30일 공개)은 관객을 배신한다. 먼저 포스터만 보고 오해해선 안 된다. '소주전쟁'이라는 단순하고 도발적인 제목에 누가 봐도 회사원처럼 양복을 입고 있는 배우 유해진의 모습을 보면 코믹한 요소가 대량 첨가된 작품으로 보이지만 이 작품은 결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제목만 보면 분명 소주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져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포털 사이트에 요약된 줄거리를 보면 충성스럽고 정직한 회사원과 글로벌 투자 회사의 야심가가 만나 반목하다가 결국 우정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소주전쟁'은 그런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소주가 대체로 쓰고 가끔 단 것처럼 '소주전쟁' 역시 대개는 씁쓸하고 어쩌다 달착지근할 뿐이다. '소주전쟁'은 진로그룹이 1997년 부도가 난 뒤 골드만삭스에 의해 2005년 매각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티브 삼았다. 영화 속 사건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들. 다만 이 작품엔 당시 일을 재구성해 뜯어보고 뭔가 시사(示唆)해보려는 의도가 없다. IMF, 문어발식 확장, 총수 경영, 기업 사냥, 국민 소주 회사, 서민의 애환 등 이 사건에 엮인 주요 키워드를 일부 끼워넣고 있긴 하나 진지하게 다뤄지는 건 없다. 대신 외환위기 시절 미국 투자 회사가 한국 소주 회사를 간단히 집어삼켜 조 단위 이익을 보고 되판 사건에 엮여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럴싸한 허구의 캐릭터를 집어넣고 얽히고 설킨 그들의 관계를 마치 범죄물처럼 반전과 반전을 반복하며 풀어내는 데 애를 쓴다.
'소주전쟁'의 원래 제목은 '모럴 해저드'였다. "고상한 척하지 마라. 돈이나 벌고 웃으면 된다"라는 대사처럼 이 영화는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오직 돈을 향해 달려가는 세태를 풍자한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조소하는 대상의 범위다. 비열한 투자 회사, 멍청한 재벌 2세, 닳고 닳은 변호사, 매수된 판사는 당연히 사정권 안에 있다. 그런데 '소주전쟁'은 언뜻 선하고 평범하며 순진해 보이는 극중 국보그룹 재무이사 표종록(유해진) 역시 도마 위에 올린다. 다시 말해 도덕적 해이로 비판 받아야 할 건 이들 뿐만 아니라 그저 열심히만 살았을 뿐 회사가 혹은 세상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관심 갖지 않은 당신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돌아 보면 표종록은 국보그룹 회장의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나. 이제훈을 포함해 손현주·최영주·바이런 만 등은 의심할 데 없는 연기를 한다. 앞으로 내달리는 듯한 이야기에 리듬과 굴곡과 밀도를 만들어주는 게 이들의 연기다. 뛰어나지 않은 배우가 없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서 유해진의 연기는 특기해야 한다. 정 많고, 정직하려 하고, 소주 좋아하고, 회사 밖에 모르고 살다가 임원까지 오른 샐러리맨을 유해진이 맡았다는 건 이 영화가 누린 복이다. 유해진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만 모인 듯한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관객을 붙잡아두는 에너지도 함께 발산한다. 그의 연기가 좋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올빼미' '파묘' '야당' '소주전쟁'으로 이어지는 최근 연기는 깊이와 넓이 모두에서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