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알바 미끼에 속아…피의자 신세 전락한 청년들[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⑫]
알바·대출 상담·계좌 대여 통해 송금책 연루단순 송금·코인 전송 업무가 피해금 전달에 이용계좌정지·신용도 하락·수사 전환…"생계 막혀" 호소경찰 "단순 송금·대여도 형사처벌 대상"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보이스피싱 지옥(3부) "그냥 생활비나 벌려고 했던 건데 계좌를 잠깐 쓰게 해줬다고 피의자가 될 줄은 몰랐어요. 돈을 벌기는커녕 계좌는 막히고, 신용카드도 정지되고 범죄자 신세가 됐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대출 상담, 단기 아르바이트, 계좌 대여 등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세탁 범죄에 연루되고 있다. 단순 송금, 코인 전송, 명의대여 등으로 위장한 조직은 피해자를 실행책으로 이용한다. 뉴시스는 자금세탁 알바에 연루됐던 20~40대 피해자들을 통해,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조직에 이용됐고 어떤 피해를 겪고 있는지 실태를 들었다. ◆"대출 상담 믿었는데"…신용도 높이려 수천만원 송금 후 피의자 전락 카페를 운영하는 30대 여성 임모씨는 사업 자금을 마련하려다 피의자로 입건됐다. 그는 온라인 대출을 알아보던 중 중개업체를 사칭한 문자를 받고 상담을 시작했다. 상대는 "신용등급을 일시적으로 높이면 대출이 가능하다"며 신분증, 통장사본,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했다. 이어 "질권 설정 후 등급을 높인 뒤 그 시점에 대출이 실행된다"며 수차례에 걸쳐 9800만원을 특정 계좌로 입금하라고 지시했다. 임씨는 안내에 따라 송금했지만 거래 내역상 입금 계좌명에 '사기계좌로 신고했다'는 문구가 표시되는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껴 경찰서를 찾았다. 해당 계좌가 이미 금융사기로 신고된 상태였다. 경찰은 임씨가 범죄에 이용된 계좌로 고액을 송금한 점 등을 근거로 조사를 진행했고 임씨는 사기 방조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생활용 통장들이 전부 지급정지됐고 신용카드 발급도 막혔다. 그저 생계를 위해 내가 갚을 대출을 받으려 했던 것뿐인데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 SNS 부업 광고, 코인 송금…생활비 벌려다 자금세탁 연루 자영업자인 40대 여성 A씨는 틱톡에서 본 '봉투 포장' 부업 광고를 보고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상대는 "단순 인증 입금만 하면 된다"며 본인 명의 계좌에서 1만원을 특정 계좌로 보내게 한 뒤 입금 내역을 캡처해 보내라고 지시했다. 며칠간 유사한 인증 작업이 반복됐고 "더 단가 높은 업무"라며 송금액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로 불어났다. 이후 "요즘은 다 코인으로 송금한다"며 테더(USDT) 구매를 요구했고 A씨가 거절하자 "지금까지 캡처해뒀다" "신고하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처음엔 단순 인증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코인까지 사서 송금하게 됐다"며 "내가 어떻게 피의자가 됐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인스타그램 대출 광고를 보고 상담을 신청한 취업준비생 오모(25·여)씨는 신분증과 계좌 정보를 넘긴 뒤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돼 지급정지됐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신용도는 하락했고 계좌는 여전히 지급정지 상태로 남아 있다.
◆"피의자 신세에 일상 멈췄다" 절규…경찰 "단순 알바도 처벌 대상" 계좌 대여, 단순 송금, 코인 전송 등 방식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된 이들이 속출하면서 유사 피해자들이 모인 오픈채팅방에는 4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 참여자는 "그냥 계좌만 줬을 뿐인데 어느 날 경찰 연락을 받았고 이후 통장이 정지돼 새 계좌도 못 만들게 됐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입금된 돈을 다른 계좌로 옮기는 간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며칠 뒤 경찰 조사에 불려갔다”며 “생활비라도 벌어보려다 피의자가 됐다"고 말했다. 일부는 "피해자라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참여자들은 "책임지는 기관이 없다"며 구조적 방치를 지적했다. 범죄조직이 계좌를 악용하면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루되는 제3자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미용실을 운영 중인 김모(33)씨는 어느 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입금된 50만원을 보고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은행에 지급정지를 요청했고 이후 형사사건이 접수됐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경찰 조사 없이 '피의자 없음' 처분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계좌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대부분은 본인의 행위가 단순 아르바이트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경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모르고 가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도한 대가를 제시하거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순간부터 의심하고 거절해야 한다"라며 "단순 업무처럼 보이더라도 타인 명의 계좌로 입금된 돈을 대신 보내거나 현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