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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 하부만 잡는 수사…상선 추적은 '그림의 떡'[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⑮]

등록 2025-07-01 06:00:00   최종수정 2025-07-01 07: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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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빠져나간 피해금, 국내서 남은 하부조직만 추적

압수수색·정보협조 지연에 기획수사 여력도 부족

기술은 진화하는데 제도는 제자리…피해 회복 난망

"하부가 줄어야 상선도 줄어…구조 바꿔야 실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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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조성하 최은수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보이스피싱 지옥(3부)

"현금은 해외로 넘어가고, 경찰은 한국에 남은 하부조직만 쫓아요. 피해 회복이 안 되는 건 당연하죠."

1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경찰 수사는 여전히 '하부조직 검거'에 집중되고 있다. 피해금이 이미 해외로 넘어간 뒤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수거책이나 대포통장 명의자만을 검거해선 실질적 피해 복구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현 수사구조상 일선 경찰서는 현금 수거책이나 계좌 명의자 등 하부조직원 수사에 집중하고 시·도청 단위의 피싱전담계에서 상선 수사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부만 쫓는 구조…수사 인프라는 제자리

일선 경찰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개별 사건을 수사하고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전화번호와 계좌,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단서를 시·도청 피싱계에 넘긴다. 피싱계에서는 이를 토대로 국제공조 수사(인터폴)를 통해 상부조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공조로 상선을 잡으려면 최소 1~2년 이상 장기 수사를 해야 한다"며 "기획수사가 가능한 여건이 안 되는 경찰서들은 개별 사건 처리도 벅차기 때문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피해 회복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요즘 범죄조직은 피해금을 빗썸 등 가상화폐 거래소로 세탁한 뒤 외국으로 빼돌린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 현장에서 검거되는 하부조직원은 범행 계획과 무관한 경우도 많다. 이 관계자는 "수거책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추적해 잡는데 대부분 '알바만 했다'고 진술하고, 계좌 명의자도 30만~40만원을 받고 계좌를 넘긴 것뿐인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서울의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수사의 한계로 압수수색 영장 발부 지연과 금융사·통신사 협조 지연 등 수사 환경을 꼽았다. 그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 발부에 며칠씩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압수수색 없이 계좌, 인터넷주소(IP), 카드 사용 내역 등을 확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요청해도 실시간 정보 확보가 어려워 피해금이 다 빠져나간 뒤에야 수사가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술은 진화하는데…뿌리 근절 사실상 어려워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점도 한계 요인이다. 그는 "텔레그램은 지시 후 5초 만에 메시지가 사라지고 피해금은 가상자산으로 전환돼 해외로 넘어간다"며 "수사팀은 공문을 보내야 하고 플랫폼은 기록을 오래 보관하지 않아 수사 대응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보이스피싱 수사는 일반 형사 사건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담 인력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기획수사를 할 만큼 여력이 있는 일선은 많지 않다"며 "지금의 사건 중심 수사 체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자금추적 기술, 정보 연계, 전문 인력 등 제도적 기반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으로 '도덕적 해이'와 '수직적 분업 구조'를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총책까지 가기 위해선 하부 조직원들을 모두 잡고 연결 고리를 밝혀야 하지만 대부분은 건당 20~30만원을 받고 움직이는 수준이라 조직 소속이라는 인식이 약하고 상선에 대한 정보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결국 보이스피싱은 돈이 되니까 계속되는 것"이라며 "수익이 유지되는 한 조직은 계속 돌아간다. 도덕적 해이가 바뀌지 않으면 범죄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검거만으로는 이 같은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수사현장에서는 하부조직 검거의 실효성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앞선 경찰 관계자는 "계좌와 전화번호, 수거책을 하나씩 제거하면 그만큼 범행 시도에 시간이 걸리고 피해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며 "피해자 세 명이 나올 걸 두 명으로 줄이는 지연 효과라도 수사 현장에선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총책까지 가기 위해선 결국 하부를 모두 잡고 서로의 연결 고리를 파악해야 한다. 조직원들이 조직 소속이란 인식이 약하고 진술도 하지 않아 상선 특정 자체가 어렵다"며 "결국 하부가 없으면 상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부 검거가 근본 대응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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