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연 끊기고 삶 무너져"…마약 중독자의 절규[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⑰]
익명의 마약 중독자 3인 인터뷰호기심에서 시작된 마약, 삶 송두리째 무너뜨려단약 성공 확률 희박…정신질환 각오해야"치료 체계 부족과 사회 낙인 장애물"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마약 디스토피아(4부) "마약은 의지력만으로는 끊기 어렵습니다. 단약은 마치 추락한 비행기에서 살아나오는 '운'과도 같아요." 지난해 우리나라 마약 사범 단속 인원이 2만3000명에 이르렀다. 이 중 투약사범은 9500명이다. 성인뿐 아니라 아동·청소년까지 마약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약 투약은 개인의 고통과 피해를 넘어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단약을 시도하는 중독자들은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재범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단순 처벌을 넘어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국가 차원의 체계적 관리가 요구되지만, 관련 제도는 미흡한 상황이다. 뉴시스는 익명의 약물중독자 모임(NA)에서 만난 3명의 중독자 20대 여성 A씨, 50대 남성 B씨, 30대 남성 C씨를 통해 마약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무너뜨리는지 생생히 들었다. ◆한 번의 호기심이 일상적 투약으로…"정신과 약으로 단약 역부족" 20대 여성 A씨는 21살에 클럽에서 환각제 마약인 엑스터시(MDMA)를 시작해 메스암페타민(필로폰)으로 빠져들었다. 호기심에 텔레그램으로 주문하는 '던지기' 방식으로 약을 구했고 주사기 사용법은 유튜브로 독학했다. "처음엔 몸과 마음이 멀쩡했지만 점점 집착과 강박이 심해졌다. 안 되던 것도 될 때까지 무리했다"고 말했다. 주 1회 투약은 빠르게 매일로 늘었다. 낮에는 직장, 밤에는 유흥업소 실장으로 일했지만 삶은 무너졌다. A씨는 "가족과 연락 끊기고 친구들과 약속도 어겼다. 약 하는 남자친구와 만나 데이트 폭력까지 당했다"고 했다. 데이트 폭력 수사 중 마약 투약이 적발돼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이 기간 중에도 수시로 투약해 결국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고 최근 출소했다. 그는 "구치소는 엄격해 투약할 환경이 안 됐지만 출소가 다가오니 재발 걱정에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A씨는 구치소에서 만난 강사의 권유로 NA에 참여하며 2개월 넘게 단약 중이다. NA는 약물 중독자들이 서로를 지지하며 중독 회복을 돕기 위해 정기적으로 모이는 국제적 비영리 단체다. 1953년 미국에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139개국에서 활동 중이다. NA는 자조모임을 통해 개인의 과거 약물 사용 경력이나 경제적 배경을 묻지 않고 회복 과정에서 필요한 지원에 집중한다. 단약을 위해 A씨는 주변에서 약을 권하는 연락도 단호히 거절하고 연락처도 바꿨다. 현재는 운동하며 가족과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약 생각은 매일 떠오른다. 정신과 약도 단약에 효과가 거의 없다. 필로폰은 단 한 번으로도 중독된다"고 고백했다.
◆40년간 시달린 중독…"부모 해칠까" 정신병적 증상까지 50대 남성 B씨는 약 40년간 마약과 싸워온 중독자다. B씨는 중학교 시절 미군부대 인근에서 대마초를 처음 접했다. 20대에는 주변인들을 통해 필로폰에 빠졌다. 수차례 형사처벌에도 주변 환경과 중독성 때문에 쉽게 끊지 못했다. B씨는 구치소 치료명령 이수 중 만난 강사를 통해 NA를 알게 되면서 단약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마약은 시작 자체를 하지 말고 이미 시작한 사람은 꾸준히 회복 모임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30대 중반 C씨는 일본 여행 중 친한 유학생 권유로 필로폰을 처음 투약했다. "해외여행이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한 번만 하면 국내에서는 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약을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2~3년간 일본을 오가며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을 구해 투약을 이어갔다. 5~6년간 지속된 투약으로 C씨는 가족을 속이고 직장도 그만두며 사회에서 고립됐다. 심각한 정신병적 증상과 망상에 시달렸고 "마약이 내 정신을 망가뜨려 부모를 해쳐야 한다고 믿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결국 C씨는 단약을 위해 경찰에 자수하고 NA 모임에 참여해 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불길에 휩싸인 비행기에서 멀쩡히 걸어 나온 사람처럼 회복은 극히 드문 일"이라며 "의지뿐 아니라 꾸준한 모임과 정부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치료·지원 체계 미흡…사회 낙인도 회복 걸림돌 중독자들은 국내 마약 중독 치료·지원 체계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 치료 시설과 사회적 지원 부족으로 실질적 회복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A씨는 "처벌 중 병원 치료도 받지만 치료시설이 부족해 도움 받기 어렵다. 상담사가 약물에 대해 잘 몰라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씨는 "병원 자체가 부족하고 상담도 약물 이해가 부족해 재활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C씨도 "정신병적 증상과 망상을 동반하는 심각한 병인데 사회적 낙인과 치료 환경 부족으로 중독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고립된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사회적 낙인이 회복에 큰 걸림돌"이라며 "마약 문제를 숨기고 쉬쉬하는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 정확한 정보 제공과 낙인 없는 치료 환경, 사회적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