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광적인 연주 한편의 행위예술로 승화...뮤지컬 '포미니츠'
오는 5월23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양부에게 학대당하고 건달 남자친구의 죄를 뒤집어쓴 뒤 교도소에 들어온 '제니'는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처럼 사납다. 2차 대전 중 동성 애인을 눈앞에서 잃은 '크뤼거'는 수십년간 교도소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속죄한다. 한 때 피아노 천재로 통했으나, 세상과 불화하는 감정을 토로하는 제니는 자유로운 현대곡만 연주하려 한다. 반면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 크뤼거는 정형화된 클래식 연주를 요구한다. 크뤼거가 제니를 콩쿠르에 내보내는 일련의 과정이 뼈대인 영화는 여타 다른 음악영화 공식처럼,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 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론은 개봉한 지 15년이 지났어도 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고난을 극복한다는 식의 단련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아니다. 감옥이 은유하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예술이 어떻게 생명력을 얻는지를 보여준다.
관객이 쉽게 감당하기 힘든 주인공들의 정서가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이면서 폭발한다. 무지막지한 제니, 절제하는 크뤼거. 언뜻 두 사람은 상반돼 보이지만, 더러는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 상대방이 된다. 제니와 크뤼거의 교류하는 감정의 화룡점정은 영화에서 그 유명한 마지막 '4분 장면'이다. 영화에서 제니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시작해, 광적인 연주를 보여준다. 일어서서 피아노 줄을 할퀴거나 두드리고 발을 구른다. 뮤지컬에서는 그 기운을 그대로 가져와 한편의 행위예술로 승화한다. 연주의 처음과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제니(김환희·김수하)와 전문 피아니스트(조재철·오은철)의 협업으로 변성(變聲)된 음악은 '라이브 예술'인 뮤지컬이 삶과 무대 사이를 오가며 생(生)을 연주하는 장르임을 명확히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크뤼거는 그 때 술을 입에 가져다 댄다.
크뤼거에 대한 헌신적인 존중심을 표하는 교도관 '뮈체'(정상윤·육현욱)에게 비중이 실려, 제니와 크뤼거의 서사와 심경 변화가 덜 보이기는 하지만 두 여성 캐릭터의 감정을 이렇게 휘몰아치게 보여준 것만으로 뮤지컬은 제몫을 했다. 상처투성이의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제니, 역시 상처로 점철된 마음으로 그녀를 대한 크뤼거. 이들이 세상과 충돌하며 만들어낸 음향은 그 어떤 연주보다 훌륭하다. 2007년 이 영화를 보고 뮤지컬화를 결심한 뮤지컬배우 양준모가 예술감독으로서 뚝심을 증명했다. 뮤지컬 '공동경비구역 JSA'의 맹성연 작곡가는 이번에도 뮤지컬에 최적화된 넘버들을 다양하게 펼쳐낸다. 크뤼거 역의 김선영·김선경은 존재감만으로도 묵직하고, 피아노 연주를 하지 못했던 김환희·김수하는 제니와 함께 성장을 이뤘다. 박소영 연출, 강남 작가가 힘을 보탰다. 오는 5월23일까지 국립정동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