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조선을 기록한 잭 런던 그리고 와인

등록 2022-05-14 06:00:00   최종수정 2022-10-11 16:33:12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말을 타고 나가 아름다운 목장의 경치를 둘러본다. 공기가 온통 와인이다. 파도처럼 굴곡진 언덕에 펼쳐진 포도밭은 온통 화염과 같이 붉은 가을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소노마 산을 가로질러 바다 안개가 그 사이로 스며든다. 나른한 하늘엔 오후의 태양이 비스듬하다.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기뻐해야 할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조선인은 겁이 무척이나 많다. 행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게으름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사회의 언어에서 어떤 단어의 존재는 그 단어에 대한 필요와 상응하는 법이다. 속도를 내야 된다는 필요성에 따라 조선말에는 적어도 스무 개의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그것들 중 몇 개를 인용한다면 ‘바삐’, ‘얼른’, ‘속히’, ‘얼핏’, ‘급히’, ‘냉큼’, ‘빨리’, ‘어서’ 등이다.”

두 글은 한 사람이 쓴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잭 런던(1876~1916)이다.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 ‘흰 송곳니’(White Fang, 영화 ‘늑대 개’의 원작)와 같은 자연주의 문학과 함께 상업적인 소설(Commercial fiction)과 SF소설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생전 50권이 넘는 장·단편 소설과 함께 희곡, 자전적 소설, 에세이를 포함 수백편의 글을 남겼다. 런던은 태어난 후 아버지의 양육 거부와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겪으며 흑인 노예 출신 양어머니가 키웠다. 런던이란 성은 친어머니가 재혼한 후 얻은 계부의 성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일을 했고 고등학교 학비도 스스로 조달했다.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에 진학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1년만에 중퇴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작가가 됐고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런던은 자연을 좋아해서 이를 배경으로 글을 썼고, 또 글을 써 번 돈을 자연에 투자했다. 그는 1905년 취재차 떠난 아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농장을 만든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북쪽에 있는 소노마 지역의 글렌 엘렌(Glenn Ellen)에  120만평이 넘는 토지를 매입해 농장으로 가꿨다. 그는 와인을 좋아해서 농장에 포도밭을 만들었고, 지금도 와인용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위에 첫번째 인용한 글은 자신의 농장에 있는 포도밭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현재 소노마 지역은 나파 밸리와 함께 미국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이다. 지금 글렌 엘렌 농장은 캘리포니아 주에 의해 ‘잭 런던 주립 역사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는 17세이던 1893년 물개 수렵선 ‘소피 서덜랜드 호’의 선원으로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의 지치지마 섬을 방문한다. 그의 첫 해외 여행지이자 아시아 지역과의 첫번째 인연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04년 1월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신문의 종군기자로 일본 요코하마와 시모노세키를 거쳐 부산에 상륙한다. 이어 목포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군산을 거쳐 제물포에 도착했다. 러일 전쟁이 발발한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당시 조선은 1895년 동학혁명 진압 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대규모 병력을 한반도로 이동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한양에 집결한 일본군의 이동경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그는 조선인 통역과 일본인 통역을 구해 평양을 거쳐 의주와 만주 지역까지 다다랐다.

그 해 1월에서 6월까지 일본군을 따라 종군하면서 조선인과 일본군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중국인을 조선인, 일본인과 비교하기도 했다.  2월28일 평양에서 러시아군과 조우한 그는 일본군의 여행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혼자 의주를 방문해 러일 간 압록강 전투를 취재하고 만주의 안둥까지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3번이나 체포됐는데 미국 정부와 루즈벨트 대통령의 개입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인용한 두번째 글은 그때의 기록을 모아 펴낸 ‘포화속의 조선’(The Korea on Fire)이라는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나중에 ‘La Coree en Feu'’라는 불어 판이 우리말로 번역돼 ‘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2011)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런던은 ‘강철군화’(The Iron Heel)와 같이 사회주의적인 시각에서 쓴 작품을 비롯 실제로 사회주의 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또 우생학에도 관심을 가져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는 책에서 조선 사람들이 비능률적이고 진취성이 부족하며 관리들은 매우 부패하여 백성들을 착취한다고 썼다. 하지만 이는 의도적인 편견이라 기보다는 그의 눈에 비친 객관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이 부상해 향후 서구와 대결할 것을 점치기도 했다.

소노마에 있는 그의 포도밭은 가족이 계속 경영하고 있다. 현재는 늑대 개 상표로 유명한 ‘켄우드(Kenwood) 와이너리’에 포도를 전량 납품한다. 켄우드 와이너리는 1976년부터 카베르네 쇼비뇽, 진판델, 시라 등 잭 런던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런던은 "나는 단지 존재하기보다는 살아 있고 싶다. 한 줌의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한줌의 재가 되겠다"고 했다. 그는 40세의 나이에 한 줌의 재가 됐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