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규제 풀었는데…전세사기 확산에 금융당국 '딜레마'
22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세입자들의 규모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이른바 '건축왕'·'빌라왕' 등의 다주택 임대사업자들은 보통 자기 자본을 들이지 않고 전세를 끼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빌라 등의 주택을 대거 사들인 뒤 임차인의 보증금을 떼먹는 수법을 사용한다. 전셋값 급등 시기에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가 좁혀지자 자기 돈은 거의 들이지 않고 수백, 수천채를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다주택자 규제까지 대폭 완화하고 나서면서, 다주택자들에게 오히려 갭투자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일부터 다주택자와 임대·매매사업자들도 규제지역에서 집값의 30%까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들도 규제지역에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30%, 비규제지역에선 종전과 동일하게 LTV 60%까지 주담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투기·투기과열지역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 대출한도 2억원과 규제지역 내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전입의무도 폐지했다. 2주택 보유세대의 규제지역에 위치한 담보대출 취급시 다른 보유주택 처분의무를 폐지하고, 3주택이상 보유세대의 규제지역내 주담대 금지도 없애기로 했다. 이에 더해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LTV 우대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 정부가 이처럼 다주택자들에 대한 대출 규제를 풀어주고 나선 것은 최근 금리 급등 등으로 주택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착륙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다주택자, 실수요자 등에 대한 '과도'하고 '징벌적'인 규제를 정상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다주택자 등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 조치가 추후 갭투자를 부추기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단 우려를 내놓고 있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인은 전세 거래를 통해 일반적인 규제 한도 이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데 예컨데 전세보증금이 주택 가격의 80%에 달한다면, 해당 주택은 자기자금이 주택가격의 20%만 있으면 매입할 수 있는 즉 '갭투자'가 가능해지는 것"이라며 "일반화하자면 전세 거래는 전세가 없는 경우에 비해 주택시장으로 자금을 추가로 유입시키며, 주택 거래를 쉽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경제적 위험이 누적되는 것은 전세 계약이 주택시장을 통해 가계부채를 증가시킨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동안 감소세를 나타내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수요도 다시 꿈틀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3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49조9000억원으로 한 달 전 보다 7000억원 줄어 3개월 연속 감소했다. 다만 가계대출 중 주담대는 전월보다 2조3000억원 늘어난 80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다만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기가 길어지고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대출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갭투자' 등 투기세력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전셋값 급등으로 매매가와 간극이 줄어들면서 갭투자자에게 유리한 조건이 조성됐던 과거와는 시장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전세 사기는 2~3년 전 부동산 급등기에 갭투자 등을 활용해 거래를 했던 건들이 이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라며 "다만 지금은 전세가격이 매매가보다 더욱 심하게 하락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 갭투자가 늘어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부동산 연착륙 등 거시경제 정책 기조는 흔들림없이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엿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도 "다주택 허용 등 대출규제 완화를 통해 능력있는 매수자가 늘어나면 오히려 부동산 가격 하방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본다"며 "지금의 문제의 본질은 1주택자냐, 다주택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년 내 경험하지 못했던 부동산 시장 급락이 문제"라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집값이 너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매수세를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너무 일괄적으로 규제를 풀게 되면 다주택자의 투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금은 생활자금 등의 실수요 관련 대출은 풀되, 부동산 쪽은 기간을 정해 놓고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나 완화를 좀 유연하게 하는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