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지휘자, 오차없는 섬세한 동작…호흡까진 배려 못해"
이어지는 곡은 손일훈 작곡가의 '감'. '에버6'와 최수열 지휘자가 함께 단상에 올랐다. 악보에 정해진 리듬과 선율이 없는 실험적인 이 곡에서 에버6는 일정한 속도와 박자의 패턴 지휘를, 최수열은 표정, 몸짓, 뉘앙스 등 사람 고유 영역인 감(感)을 활용한 지휘를 한다. 시연을 마친 후 최수열이 '에버6'에 악수를 건넸다. 인간 지휘자가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오르는 로봇 지휘자에게 보낸 인사였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오는 30일 해오름극장에서 로봇이 지휘자로 나서는 공연 '부재'를 선보인다. 로봇 '에버 6'와 최수열이 지휘자로 나서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는 지휘를 펼친다. 이어 '에버 6'와 최수열이 한 곡을 동시에 지휘하며 로봇과 인간의 창의적 협업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여미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는 26일 해오름극장에서 시연이 끝난 후 이뤄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너무나 당연한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단순한 동작만 나올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정교한 동작이 나와 놀랐고, 애정을 갖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여 직무대리는 "기술과 인간의 대립과 상호협력은 첨예한 이슈"라며 "이번 공연이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새로움을 생각해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기술 개발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맡았다. 연구진이 로봇 '에버 6'를 개발하며 가장 염두에 둔 기능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박자 계산이다. 연구진은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로봇학습지휘자로 정예지를 섭외해 지휘 동작을 연구했으며, 타점에 이르는 지휘봉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해 여러 차례 모션 캡쳐(몸에 센서를 달아 인체 움직임을 디지털로 옮기는 일)작업을 반복했다.
연구에 참여한 이동욱 박사는 "에버6를 통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동작을 취해야 하는 지휘에 도전하는 로봇을 만들고자 했고, 감정 표현을 최대한 구현하고자 했다"며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속도를 최대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감정 표현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최수열 지휘자는 에버6에 대해 "제 생각보다 에버6의 동작이 굉장히 섬세해 놀랐다"며 "지휘자들이 모든 관절을 다 써야 한다고 배우는데 어깨부터 모든 관절을 다 유연하게 쓴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휘 동작이라는 것이 굉장히 섬세한데 연주자나 지휘자가 보기에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된 것이 놀랍다"면서도 "하지만 로봇의 역할은 지휘자가 아닌 지휘 퍼포머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에버6의 치명적 약점은 듣지 못한다는 거죠. 일반 청중들은 지휘자의 역할을 공연 당일 무대 위에서 지휘봉을 흔든 정도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연습과정에서부터 악단의 소리를 듣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하고 제안하고 설득해야 하죠. 단원과의 신뢰도 꾸준히 쌓아가야 하고요." 다만 지휘의 보조나 연습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로봇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 같은 작품을 연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에버6는 정해진 리듬과 선율이 없는 이 곡에서 제가 아무리 즉흥적으로 변화를 줘도 흔들리지 않고 연주자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 지를 정확하게 짚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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