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김구림 "아방가르드 작가인데...파격 없어 죄송"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국립현대미술관서 첫 개인전"미술관 광목으로 묶으려 했는데 불발"비디오아트 등 230점 전시...9월7일 영화-무용-음악-연극 상연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작가라 하는데 파격이 없어 미안하고 죄송하다." 김구림 화백은 "이 전시는 고리타분한 것들만 늘어놨다"며 여전히 날이 선 모습이다. 87세. 심장 박동기를 달고 휠체어를 탔지만 실험미술에 대한 열정은 기가 꺾이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곳이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 전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최고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데도 공식적으로 터진 폭탄 발언은 그의 '전위 예술'관을 그대로 전했다. 단단히 화가 난 채 관료주의적 예술행정을 지적한 김 화백은 이번 개인전에서 1970년대 미술관의 외벽을 천으로 둘렀던 전위 예술을 재현하려는 욕심이 컸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옛 국군기무사령부 본관)은 등록문화재 375호로 미술관의 반대에 부딪혔다. "문화체육관광부에도 문의 했지만 헛수고였다"는 그는 "이번 전시에 설치 자체도 못하고 파격이 없어 미안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가 전시를 2개월 앞두고 언급해 전시 개막에 맞춰 협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여서 문화재청 심의를 받는게 필요한데, 과거에도 박이소 작품을 서울관 옥상에 작게 설치하는 것도 통과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김 화백이 대규모 전시에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건 그가 평생 '새로운 미술'을 화두로 작업해왔기 때문이다. 미대를 다니다 배울 게 없어 학업을 그만둔 후 설치 미술로 돌아섰다. 1960년대 당시에는 낯선 비디오아트,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1960년대 섬유회사에서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영화, 연극, 무용 등에 관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960년대 말에는 ‘회화 68’, ‘AG’, ‘제4집단’등 예술집단 활동을 주도하며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 아트, 메일 아트, 실험영화, 대지미술, 해프닝 등을 발표했다. 1970년대 전위적인 작품들은 제7회 파리비엔날레(1971), 제12회 상파울루비엔날레(1973) 등 해외 전시에서 주목 받았다.
미술관을 감싸는 대규모 퍼포먼스가 다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서울관 전시는 현재에도 신기한 김 화백의 왕성했던 호기심과 상상력을 확인 할 수 있다. 김구림의 70여 년에 걸친 예술세계를 총망라한 전시다. 경북 상주 출생으로, 실험미술의 선구자로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존 가치와 관습에 대한 부정의 정신을 견지한 그는 회화와 판화, 조각, 설치미술을 비롯하여, 퍼포먼스, 대지미술, 비디오아트, 메일 아트에 이르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지속해 왔으며, 실험연극, 실험영화, 음악, 무용에도 종횡무진 개입해 왔다. 1959년 대구 공회당 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화단에 두각을 나타냈다. 1970년대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판화와 비디오아트를 본격적으로 실험하였고, 1980년대에는 미국을 방문하여 작업의 변화를 추구하며 '음과 양' 시리즈를 시작하였고, 2000년대 이후에는 동일 제목의 오브제 작업 등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늙지 않은 문제 의식을 보여주는 신작 2점이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됐다. 첫 번째 작품 '음과 양: 자동차' 설치는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재해를 비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두 번째 작품 '음과 양' 설치는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역사의 순간들이 반복 송출되는 비디오 조각 작품이다.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간, 지역, 사건 등의 요소들을 충돌, 증폭시키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그의 ‘음과 양’은 김구림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로 현재까지 지속해 나가고 있는 개념이다. 옛날엔 아웃사이더였던 김구림은 이제 한국실험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1960-1970년대 전위예술의 선구적인 작품들은 미국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영국 런던 테이트 미술관, 테이트 라이브러리 스페셜 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관 6, 7전시실에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230여 점의 작품과 60여 점의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됐다. 오는 9월7일 오후 2시 MMCA다원공간에서 김구림 공연도 열린다. 한국 실험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1/24초의 의미'(1969), '문명, 여자, 돈'(1969)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1969년에 시나리오, 안무, 작곡을 한 '무제'(무용), '대합창'(음악), '모르는 사람들'(연극)이 각 15분간 차례로 선보인다. 무용-음악-연극에는 70여 명의 출연자가 참여할 예정이다. 전시는 2024년 2월12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