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1년③]"나비처럼 날아간 아들…내 삶의 방식도 바뀌어"
"잠 못자 하염없이 걸어…둘째네 근처 이사""녹두 빈대떡 먹던 명절…이젠 봉안당에서""아들 생일도 유가족과…함께하며 힘 얻어""이룬 것 없이 1년 지나…특별법 통과 노력"
[서울=뉴시스]홍연우 김래현 기자 = "애들이 녹두 빈대떡을 좋아해서 명절에 다 같이 모이면 함께 만들어 먹곤 했는데, 참사 이후엔 그런 게 일체 없어졌죠. 이젠 봉안당에 가니까. 삶의 방식 자체가 많이 바뀐 거죠."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뉴시스와 만난 고(故) 임종원씨의 아버지 임익철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후 1년 동안의 이야기를 덤덤한 목소리로 풀어나갔다. 지난해 핼러윈 이태원에서 사망한 아들 종원씨는 든든한 장남이자, 활발하지만 사진은 찍기 싫어하고, 어린 조카들과 괴물 놀이를 해주던,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그런 아들을 잃고 임씨의 삶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참사 직후인 지난 1월 뉴시스와 인터뷰했던 그를 10개월여 만에 다시 만났다. ◆"녹두 빈대떡 먹던 명절…이젠 봉안당에서" 평소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이 있던 임씨 부부지만, 참사 이후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임씨는 "나도 그렇지만 종원이 엄마가 특히나 많이 힘들어했다. 잠도 못 잤다"며 "몸을 고달프게 만들면 잠을 그나마 좀 잘 수 있으니 북한산 등 주변 산 둘레길 10㎞ 넘는 거리를 매일 하염없이 걸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부부는 서울 마포구에서 둘째 아들 집 근처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로 이사갔다. 그는 "작은 애가 엄마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자기 집 근처로 와서 지내자고 하더라"며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큰 애를 잃고 보니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었다. 원래 살던 집을 비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소중한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겪은 두 번의 명절도 이전과는 달랐다. 결혼한 두 아들이 임씨 집에 찾아와 함께 좋아하는 녹두 빈대떡을 해 먹곤 했지만, 이젠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모여 봉안당을 찾고, 합동 차례상을 차린다. 종원씨가 있는 봉안당은 음식 반입도 되지 않다 보니 좋아하던 빈대떡 모형을 들고 가는 게 다다.
◆"아들 생일도 유가족들과…함께하며 힘 얻어" 임씨는 그래도 다른 유가족과 함께한 덕에 지난 1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둘째 아들네 손녀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서울광장 분향소로 온다. 유가족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분향소 지킴이 당번' 날이면 오후 10시까지 천막을 지키기도 한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한데 모여 떠나보낸 이들 이야기도 하고, 나눠줄 보라색 리본도 접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고 했다. 명절은 물론이고 종원씨의 생일이던 지난달 30일에는 유족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축하했다. 그러면서도 임씨는 다른 유족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의 자녀를 떠나보낸 분들이 많지 않나. 그분들은 한창 일을 하고, 다른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여기 매이다 보니 힘든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참사 이후 급작스레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 생전 해본 적 없던 '투쟁'의 길로 들어서다 보니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지난해 10월에 멈춰있는데, 주변은 어느새 그때 일을 잊은 것 같아 힘들다고 털어놨다. 우연히 찾은 성수동 서울숲 한구석 아무도 보지 않는 외딴 곳에 '성수대교 기념 추모비'가 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래도 임씨는 4·16 세월호 참사 등 다른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과의 연대로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지난 19일에도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오셔서 분향소에 노란 리본을 놓고 가주셨다"며 "서로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뜻깊다"고 말했다. 올여름 발생한 충북 오송지하차도 침수 참사 유가족 생각도 잊지 않았다. "그쪽은 상황이 훨씬 더 열악하더라. 그래서 힘을 보태주려고 49재 때 갔었다"며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겠다고 했다.
◆"이룬 것 없이 1년 지나…특별법 통과 노력" 줄곧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어 나가던 임씨도 유족들의 염원인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얘기할 땐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청원으로 야4당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후 지난 6월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됐으나 여당 측 반대가 이어지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통과 이후 3개월 넘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임씨는 "어처구니없는 상태로 1년이 지나갔는데 이뤄진 게 없다"며 "사실관계 확인, 책임자 처벌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법 통과를 위해 앞으로도 더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사고에 대해 책임이 있는, 최고 책임자가 '안전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있어야 하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그렇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제2의, 제3의 '이태원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인터뷰 도중 한 번씩 왼손 약지에 낀 나비 모양 금반지를 쓰다듬곤 했다. 의미를 묻자 떠나보낸 큰아들을 떠올리며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라 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싫어하던 종원씨라 나비넥타이를 한 결혼식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썼는데, 그걸 본 한 시인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라"는 시를 써줬다고 한다. 그는 "그 시를 들으니 회사 다니던 시절, 두바이 출장 때 사 온 나비 모양 금반지가 생각났다. 우리 아들도 나비처럼 좋은 곳으로 훨훨 날아가지 않았겠냐"며 애써 웃어 보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