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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도 적국도 말리는데…중동 들쑤신 트럼프

등록 2017-12-24 0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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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지구=AP/뉴시스】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거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풍자 벽화가 그려져 있다. 2017.12.8.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전 세계가 들끓고 있다. 미국의 적대국들은 물론 주요 동맹들까지도 한 목소리로 그를 규탄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인했다. 또 이스라엘 텔아비브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 모두의 성지 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미는 각별하다. 이 곳은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의 성지다. 예수의 무덤으로 불리는 성묘 교회, 이슬람교의 알 아크사 사원, 솔로몬왕이 세운 최초의 유대교 성전이 여기 모여 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에선 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11세기 말부터 200년간 십자군 전쟁으로 이 곳을 놓고 싸움을 일삼았다. 우여곡절 끝에 1516년 이슬람 오스만 제국이 통치권을 잡았지만 영원하지 못했다.

 1차 대전 때 예루살렘을 차지한 영국은 1917년 11월 '밸푸어 선언'으로 종교 갈등의 문을 다시 열었다. 영국은 당시 서방에서 세력을 키운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이주를 허용했다.

 유대인들은 이 선언을 발판 삼아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스라엘은 같은 해와 1967년 1·3차 중동전쟁을 통해 예루살렘 전체를 장악하고 이 곳을 수도로 천명했다. 팔레스타인은 '인티파다'(반이스라엘 운동)로 격렬히 저항했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엔은 1947년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했다. 이후 이-팔 공존을 추구하는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해 양측의 평화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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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AP/뉴시스】15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의 자치구역 가자지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2017.12.16.
◇ 트럼프의 속내는...

 트럼프 행정부 전까지 미국은 이스라엘과 돈독한 동맹 관계임에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 많은 사상자를 낼 역내 충돌을 예방하고 서로 간 평화적 합의를 중재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가 예루살렘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그의 핵심 지지 기반인 친이스라엘 유대인과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과거 선거 때 같은 주장을 했지만 취임 뒤엔 매번 공약을 물렀다.

 트럼프는 친이스라엘 보수파와 관계가 밀접하다. 미국 정·재계에 포진해 있는 이들 세력은 친이스라엘 정책을 위해 막강한 로비력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유대인이다.

 트럼프는 취임 1년차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그와 러시아의 대선 내통 스캔들을 둘러싼 특별검사 수사도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주요 지지층의 오랜 염원을 해소함으로써 내부 결집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중동 내 미국의 최대 동맹인 이스라엘, 사우디 아라비아와 합세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새 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을 노골적으로 감싸고 이란을 역내 최대 위협으로 지목했다.

◇ 요동치는 이슬람 세계

 트럼프의 폭탄 선언으로 중동은 요동치고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 결정을 환영하고 나선 반면 팔레스타인은 분노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선 대규모 반미·이스라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평화협상이 끝장났다며 저항만이 살 길이라고 촉구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1·2차 인티파다가 진행되면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운동이 재개되면 또 대규모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국제테러단체 알카에다 연계 조직인 알샤바브, 아프간 무장세력 탈레반 등이 잇달아 반미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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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AP/뉴시스】7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2017.12.8.
팔레스타인의 분노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로도 번졌다. 세계 최대 이슬람 조직인 이슬람협력기구(IOC)는 긴급 총회를 열고 일제히 미국을 규탄했다. 또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수도로 인정하겠다며 미국에 맞불을 놨다.

◇ 동맹도 적대국도 트럼프에 반대

 국제사회 역시 일제히 미국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보호무역과 국제협약 탈퇴를 밀어붙여온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더 세계무대에서 고립될 거란 지적이 많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은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을 철회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미국의 반대로 채택이 무산됐다. 투표 결과는 14대 1로 예상대로 미국 홀로 자국 입장을 고집했다.  유엔 회원국들은 21일 긴급 총회를 열어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찬성 128표, 반대 9표, 기권 35표, 불참 21표로 가결했다.

 유럽연합(EU), 아랍연맹(AL)은 한 목소리로 트럼프를 뜯어말리고 있다. 미국과 반목 관계인 러시아와 중국, 이란 역시 트럼프의 일방적 결정이 중동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또 다른 열강인 러시아와 중국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이-팔 평화협상에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끝장났다고 비난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트럼프의 선언 직후 중동 방문을 계획했지만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일정을 내년 1월 중순으로 미뤘다. 아바스는 물론 역내 이슬람· 기독교 지도자들이 펜스와의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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