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걸린 양승태 재판…'직권남용' 유무죄가 최대 쟁점
양승태, 47개 범죄혐의 중 41개 직권남용죄대법원장 직무범위·권한 두고 공방 벌일 듯양승태 "죄 성립 안해" vs 검찰 "위법 지시"직권남용 유무죄 엇갈려…법원 판단 주목
12일 법원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에 배당됐다. 재판부는 향후 절차 등을 정리하는 준비기일을 거친 후 본격적인 공판을 시작할 예정이다. 법정에서는 직권남용 혐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유무죄를 판가름할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형법 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최대 징역 5년에 처하도록 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전날 양 전 대법원장을 47개의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이중 41개 혐의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했다. 이는 사법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판사들에게 업무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것이 골자다. 양 전 대법원장이 특정 재판에 개입하기 위해 문건 작성·검토 등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에 따라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에서 일어난 일련의 행위가 대법원장의 직무범위에 해당하는지, 그 권한을 넘어 위법한 것인지 여부를 두고 첨예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져 재판에서도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무진들이 한 일이라거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춰 법정에서도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직접적인 공모 관계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법원장의 직무범위 내로 '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 대법원 사건에 관해 논의할 수 있고 판사들 인사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는 점 등을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도 '물의 야기 법관' 문건을 보고 받은 사실 등을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사법부 수장으로서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나 보고 없이 이 같은 조직적인 행위들이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설 것으로 예측되면서 결국 재판부 판단이 주목된다. 직권남용 혐의는 국정농단 사건부터 주목받아왔는데 엇갈린 판단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일부 사건에서는 직권남용 범위를 좁게 해석하면서 입증이 쉽지 않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게 다스 미국 소송 지원을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가 1심에서 무죄 판단을 받았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외형적으로 공무원의 일반적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의 직무권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또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 자금 지원을 요구한 행위도 지난해 1심에서 직권남용 혐의가 무죄로 인정됐다. 강요 혐의는 유죄였지만 이 역시 권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 안태근 전 검사장은 후배인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검사 인사를 다루는 법무부 검찰국장의 업무를 남용해 인사담당 검사에게 원칙과 기준에 반하는 인사를 하도록 했다며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이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혐의와도 유사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 심사에서 이를 강조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양측 주장과 증거 등에 비춰 혐의별로 유무죄를 각각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외에도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등 혐의도 받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