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화재 계기 고층건물 외장마감재 논란 격화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영국 런던 고층아파트 그렌펠타워에서 지난 14일 새벽 발생한 화재는 대규모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불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삼켜버리는 장면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이 화재로 7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한 생존자는 당시 “이런 화재를 본 적이 없다”며 “미국 9.11 테러를 연상케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층보다 위층에서 불이 시작됐는데 세상에, 너무 빨리 번졌다“라며 ”30분 안에 아파트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사건 초기엔 화재 원인으로 가스 폭발, 전기합선, 고장 난 냉장고까지 다양하게 지적됐다. 하지만 화재가 급속히 확산된 원인으로 저렴한 외장마감재 사용이 지목됐다. 1974년 건축된 이 아파트는 지난 2016년 5월 1000만 파운드(약 144억 원)의 리모델링을 했다. 이때 건물 외벽에 붙인 외장마감재인 단열재와 저가 플라스틱 패널이 이번 화재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영국 언론들은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더 인디펜던트는 지난 14일 이 자재가 미국에서는 안전규정 상 높이 12m 넘는 건물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자재를 생산하는 미국회사 레이노본드(Reynobond)는 가연성 플라스틱 코어가 있는 패널과 내화성 코어가 있는 패널 등 3가지 모델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렌펠타워 리모델링 시공사는 그 중 저가 가연성 패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래이노본드의 한 영업사원은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렌펠타워에 사용된 PE 모델 패널은 화재 우려 때문에 미국에서는 고층빌딩 사용을 금하고 있다며, 이 패널은 고층건물이나 병원과 등 주요 공공건물이 아닌 소형 상가건물이나 주유소에 많이 사용된다고 밝혔다. 그는 ”FR 모델은 내화성 패널이고 PE 모델은 플라스틱 패널“이라고 덧붙였다. 더 타임스는 PE패널은 영국 기준에 맞지만, 독일에선 '가연성' 제품으로 분류된다고 지적했다. 인디펜던트는 또한 내화성 패널 가격이 가연성 패널보다 2파운드(약 2900원) 더 비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단열재 역시 이번 화재에서 인명피해를 더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지난 20일 불에 타면 유해가스가 발생하는 셀로텍스 RS5000 단열재가 그렌펠 타워에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단열재 생산업체 셀로텍스는 자체 웹사이트에 RS5000 제품군이 불에 노출되면 엄청난 화염이 발생한다고 경고해 놓고 있다. 이 회사는 또한 모든 유기물질처럼 이 제품도 연소하는 과정에서 유독가스가 방출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점화원으로부터 멀리 보관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 제품은 고열에 타게 되면 시안화수소 가스를 방출한다. 이 가스는 흡입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이 제품이 탈 때 건물의 온도는 1000도까지 달아오를 수 있다. 셀로텍스는 지난해 5월 그렌펠타워가 리모델링할 때 자사 제품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자사 제품이 영국 안전기준을 준수했으며 화재 위험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분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테리사 메이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그렌펠 타워 리모델링에 사용된 외장마감재가 영국 건축규제법상 사용이 금지됐을 수도 있다며 비난 여론에 가세했다. 그렉 핸즈 통상장관은 지난 18일 정부가 안전평가를 하는 그렌펠타워와 비슷한 2500개 빌딩에 대해 “긴급 점검”을 수행하고 있다며 “내가 아는 바로 외장마감재는 보도 내용처럼 영국 건축규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확히 어떤 피복재를 사용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연관됐는지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도 지난 18일 BBC에 출연해 “내가 알기로 문제의 외장마감재들이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사용이 금지된 자재”라고 밝혔다. 빗물 침투 방지용 외장마감재인 레인스크린 패널과 창문을 제작하는 시공사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메일에 영국에서 레이노본드 PE패널은 사용 금지된 제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현 건축법상 이 패널은 저층 및 고층 건물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핵심문제는 현재 건물의 전체 외관 디자인이 적절하게 안전 검사를 받았는지, 시공사가 리모델링 전에 소방당국, 준공검사당국 관계자, 건축가를 등 관계당국들의 승인을 얻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현지 건물안전 관련 전문가들은 외장마감재들이 ‘굴뚝‘ 역할을 해 화재 시 건물 외벽과 이 패널 사이 공간을 타고 삽시간에 건물 위쪽으로 번져간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지 주민단체 그렌펠타워 액션그룹(Grenfell Tower Action Group)도 외장마감재 때문에 한 하구에서 발생한 화재가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건물 전체로 확산했다고 주장한다. 영국 런던소방노동조합의 소방관 데이브 그린은 데일리메일에 “이 주장은 아직 추측일 뿐”이라며 “그렌펠타원처럼 1970년대 건축된 고충건물들은 각 층마다 화재가 확산하지 않고 진압될 수 있도록 불연성 콘크리트 자재로 상자처럼 설계됐었다”라고 밝혔다. 그래도 그는 “분명히 당시 밤새 건물이 엄청난 큰 화염에 휩싸였다”라며 “열린 창문 근처에서 불이 나면 외부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 창문에 레이스커튼이 있으면 불이 커튼에 옮아 붙어 거세질 수 있다. 이 불이 외장마감재에 붙어 연기가 났을 것”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 사는 한 음악가는 지난 15일 현지 TV방송사 채널4에 "(화재로) 숨지거나 집을 잃은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이 같은 변을 당했다"라며 "부자들은 적절한 화재안전 조치 없는 이런 건물에서 절대 살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런던 경찰청은 이번 화재와 관련해 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며 정확한 원인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에서 여러 나라에서 금지된 저가 외장재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고층아파트 화재는 사회 빈부격차 논란으로 비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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