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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의 민낯①]'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 가보니

등록 2017-07-12 0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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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2015.06.05. [email protected]
명칭만 '특화·심화학습'···실상은 '선행학습'
선행학습 금지, 학원가서 '유명무실'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중학교 1학년 성적이 대입을 좌우해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유리합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학원. 수강 상담을 신청한 기자에게 실 핀을 촘촘히 꽂아 고정한 올림머리의 안내 직원이 상담실로 안내했다. 학원 안으로 들어서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안내 직원이 곧바로 상담 신청서를 건넸다. 신청서에서는 자녀의 개인 신상정보를 비롯해 과목별 성적, 지원반(의대·치대·사관학교 등), 지원 대학 등 다양한 항목들이 나열됐다. 

예약 시간이 한 참 지났지만, 한 평(3.3㎡) 남짓한 상담실에는 신청서 작성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인기척이 없었다. 불투명 유리 너머 또 다른 상담실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힐끗 보였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안내 직원이 상담실로 다시 들어와 "먼저 예약하신 학부모 상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상담실 한쪽 벽에는 영문이 빼곡하게 적힌 각종 인증서와 명문대 합격 사례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이 불투명한 유리문을 붙잡고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자신을 상담실장이라고 소개한 그의 손에는 앞서 상담을 마친 학생 상담 기록부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상담실장은 행색을 살피는 듯 잠시 기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기자에게 곧바로 대입 입시와 학원 교육 과정·수업 내용이 담긴 안내서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설명이 끝날 때마다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학원 등록을 줄기차게 권유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중학교 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고, 중학교 성적이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져요. 이렇게 해야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왕 시키는 공부라면 자녀가 명문대에 붙어야 부모님 입장에서도 뿌듯하고 좋은 일 아닐까요."

교육 당국의 단속을 의식한 듯 그가 건넨 안내서 어디에도 '선행학습'이라는 문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또 상담 내내 선행학습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선행학습 대신 심화학습이나 특화학습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명칭만 심화·특화학습이지, 실상은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선행학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술 더 떠 학습효과와 대입 실적에 대한 홍보도 빼놓지 않았다. 

"저희 학원만의 노하우로 개발한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학생 개인마다 맞춤형으로 자동 설계됩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진학 전문 선생님이 학생부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해주고요. 학생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교육하다보니, 특목고부터 명문대 입학까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기자가 잠시 등록을 머뭇거리자,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시기가 지나면 늦는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또 중학교 자유학기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초등 4·5학년이면 본격적으로 중·고등학교 공부 시작해야 돼요. 안 그러면 다른 아이들한테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영어는 원어민 교사가 일주일에 2번 수업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이미 학원 프로그램이 잘 설계돼 있고, 거기에 맞춰서 학생에게 맞춤형으로 지원하니 아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의 말마따나 여름방학 심화학습 수업을 모두 수강할 경우, 학생들은 하루 종일 학원 밖을 벗어날 수 없다. 한 달 수강료는 80~100만원에 육박하고, 학년이 올라가거나 진학을 희망하는 대학에 따라 수강료가 달라진다. 또 내신 및 비교과영역 관리와 지원 대학에 따라 수강료는 천차만별이다.   

사실상 선행학습이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선행학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광고만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교과 수준이 쉬워져 선행학습이 필요 없다고 얘기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인정받기 위해서 무엇보다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 결정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바뀔 가능성이 높은 대입 제도에 대한 설명을 끝내자마자 여름방학 심화학습반 마감이 임박했다며 등록을 재촉했다. 심화학습반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수능 절대평가 도입이 확실해지고, 최근 대학들이 내신이나 교내 활동을 중시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리면서 학생 혼자서 감당하기 벅차요. 그런 부분들까지 학원에서 다 맡아서 하니 안심하고 등록하세요. 방학 전이라 몇 자리 남았지, 방학이 시작하면 심화학습반에 등록하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못 해요."

기자가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상담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학원 출입문에는 '여름방학 심화학습반, 마감 임박'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진 심화학습반 모집 광고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그 사이로 학생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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