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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잘알]변호영·차범근·손흥민…한국 축구선수 해외진출 발자취

등록 2019-12-02 12:50:49   최종수정 2019-12-02 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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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변호영 등 3명 홍콩行
축구협회, 2002년부터 9차례 유학프로그램…손흥민 '발굴'
이강인·이승우·백승호 10대초반에 스페인으로 건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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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AP/뉴시스】2009~20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시절의 박지성(33·PSV에인트호벤)의 모습.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박지성이 세계적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골을 합작한다.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고 칭하던 콧대 높은 조세 무리뉴 감독은 손흥민을 격려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다.

최근 수년 전부터 해외축구는 축구팬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흥밋거리가 됐다. 축구 도사들이 모인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우리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게 된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해외에서 뛰는 국내 축구 선수들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빅리그 입성이 차범근 같은 불세출의 선수에게만 허락된 일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서슬퍼런 시기에도 선수들의 해외 진출 시도는 있었다. 먹고 살 걱정을 하던 1960년대에 꿈을 찾아 물 건너 간 이도 있다. 성패를 떠나 그들이 물꼬를 터준 덕분에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덜 겪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75년, 홍콩으로 떠난 수문장 변호영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5년. 변호영, 박수덕, 강기욱은 홍콩 세미프로구단인 세이코의 입단 제의를 받았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해 10월 세 선수는 함께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 선수의 이름은 대한축구협회가 제작한 한국 축구 연혁에도 등장한다.

"홍콩 세미프로팀에 입단한 박수덕, 변호영, 강기욱 선수. 이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들에 앞선 1960년대 말 홍콩에 발을 디딘 허윤정도 있다. 일각에서는 허윤정을 한국 최초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로 분류한다.

변호영은 1970년대를 주름잡은 골키퍼였다. 1972 뮌헨올림픽 최종예선,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킹스컵,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등에서 골문을 지켰다.

홍콩 세이코가 세 선수에게 내민 조건은 1000달러에 가까운 월급과 40평짜리 아파트, 자동차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변호영의 기량은 홍콩에서도 통했다. 1976년 홍콩체육기자클럽이 선정한 바이스로이컵 MVP도 변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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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1975년 사진 가운데 인물이 변호영 선수다. 사진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갈무리한 것이다. 2019.12.02
그러나 국내 축구계는 변호영을 포함한 이들 3인방을 보듬어주지 않았다. 외국에서의 활약을 치하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

홍콩으로 가기 전 태극마크를 반납했던 변호영이 1977년 대표팀 복귀를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변호영 등의 복귀를 접한 다른 대표팀 선수들은 "개인 능력이 강조되는 프로팀에서 돈벌이를 하던 선배들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느냐"고 반발했다.

심지어 같은 직업에 몸담던 동료들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1970년대 해외에서 축구로 돈을 버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차범근, 해외 진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해외 진출에 인색했던 분위기는 차범근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차범근은 1978년 다름슈타트를 통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한국 축구사의 길이 남을 전설의 시작이었다.

배려를 약속했던 공군이 말을 바꾸면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른 뒤 다시 군으로 돌아가는 요상한 상황을 마주했지만, 차범근은 무너지지 않았다.

남은 군복무를 마치고 이듬해 7월 다시 분데스리가에 입성한 차범근은 순식간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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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사진은 지난 2013년 10월28일 캐나다 밴쿠버의 BC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래피즈와의 은퇴 경기에 나선 이영표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3.10.31.
빠른 발과 서양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는 피지컬로 무섭게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반신반의하던 팬들은 차범근을 향해 '갈색 폭격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1979~1980시즌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UEFA컵의 위상은 지금의 챔피언스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범근은 이후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1988년 다시 한 번 UEFA컵을 품었다.

분데스리가에서만 98골(308경기)을 책임진 차범근의 대성공을 필두로 해외 진출을 바라보는 국내 축구계의 시선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원석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황선홍(이상 독일), 서정원(프랑스), 노정윤(네덜란드) 등이 큰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변곡점이 된 2002 한일월드컵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가 낳은 유무형의 자산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 러시에 다시 불이 붙은 것도 이때다.

월드컵을 통해 큰 주목을 받은 선수들은 대회가 끝난 뒤 앞다퉈 해외로 나갔다. 1990년대 J리그 출범과 맞물려 일본으로 향하던 대표 선수들은 월드컵에서의 자신감을 앞세워 유럽으로 시야를 돌리기 시작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했다. 익히 알려졌든 이 선택은 두 선수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네덜란드에서 경험을 쌓은 두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이상 잉글랜드)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 PSV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을 때조차 그를 감싸며 잠재력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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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쿠젠(독일)=AP/뉴시스】사진은 2015년 2월14일 볼프스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21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22분 해트트릭을 달성한 뒤 세리모니를 하고 있는 손흥민의 모습.2015.3.16.
이을용은 터키(트라브존스포르), 송종국은 네덜란드(페예노르트)에 둥지를 틀었다. 기대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천수는 월드컵이 끝난 1년 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레알소시에다드)에 입단, 스페인 진출의 문을 열었다.

월드컵 이전에 이탈리아 세리에A(페루자)에 몸담았던 안정환은 구단 간 갈등의 희생양이 돼 자신의 뜻과 달리 일본 J리그에 입단하는 불운을 겪었다. 안정환의 특출한 개인기를 좋아했던 팬들은 아직도 이때를 아쉬워한다.

▲‘손흥민 신화’의 시작, 대한축구협회 유학 프로그램

월드컵에서 큰 재미를 본 대한축구협회도 해외 진출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사업이 '우수선수 해외 유학 프로젝트'다.

월드컵 4개월 뒤인 2002년 10월 엄선된 1기 선수들이 유학길에 올랐다. 10대 중반의 유망주로 각광받던 양동현, 이용래, 강진욱, 어경준, 김동민이 혜택을 받아 프랑스 메츠로 떠났다. 이들은 이듬해 5월까지 8개월 간 선진축구를 몸으로 익혔다.

길게는 1년, 짧게는 9개월 가량의 유학은 2009년 6월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3기까지는 FC메츠로 보내졌고, 4기 1차와 2차는 포르투갈 SC브라가와 브라질 팔메이라스의 도움을 받았다.

지동원, 남태희, 김원식으로 구성된 5기 1차 유학생들은 2007년 8월부터 10개월 가량 잉글랜드 레딩에서 꿈을 키웠다.
총 29명의 대한축구협회 유학생 중에는 손흥민도 있다.

손흥민은 2008년 7월 김민혁, 김종필과 함께 6기 1차 유학생으로 선정돼 독일 함부르크로 향했다. 훈련 기간 중 재능을 인정받아 함부르크와 정식 계약을 체결한 손흥민은 '발롱도르' 최종 후보 30인에 포함될 정도의 슈퍼스타가 됐다.

대한축구협회의 유학 프로젝트는 강화된 현지 규정에 따른 현실적 제약과 유스 시스템 정착을 꾀하려던 K리그 구단들의 반발에 부딪혀 2009년 6월 6기 2차를 끝으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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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AP/뉴시스]발렌시아 이강인이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발렌시아의 메스타야 경기장에서 열린 첼시(잉글랜드)와의 2019-20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홈경기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19.11.28.
지금은 여러 선수들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해외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강인, 이승우, 백승호는 10대 초반부터 스페인으로 넘어가 줄곧 해외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

권창훈, 이재성 등은 K리그에서 경쟁력을 인정 받아 둥지를 옮긴 케이스다. 유럽은 아니지만 일본과 중국에도 많은 선수들이 진출한 상태다.
   
유럽무대 한국 선수 최다골 기록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차범근의 121골이었다.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전설같은 이 기록이 손흥민에 의해 지난달 경신됐다. 손흥민은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레버쿠젠에 이어 2015년 EPL 토트넘으로 이적한 이후 10년간 통산 125호골을 넣었다.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경신되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그렇다면 A매치 득점왕은 누구일까. 국가대표 136경기 58골의 차범근이 단연 1위다. 103경기에서 50골을 기록한 황선홍이 역대 2위다. 손흥민은 현재 87경기 26골을 기록중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j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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