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송대관, 독립유공자 후손이었다 "조부가 3·1 독립선언서 배포"
송대관은 지난해 8월16일 방송된 TV조선 '미스터로또'에서 자신이 송영근의 손자라며 "할아버지께서 장날을 이용해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셨다"고 밝혔다. 같은 해 8월27일 MBC 표준FM '손태진의 트로트 라디오'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겪은 고문과 고통은 정말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인데 다음 세대들은 할아버지의 업적으로 대한민국이 광복, 해방된 거라 자부심을 느낀다"며 조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할아버지께서 군산 형무소에 계시며 너무나 많은 고문을 당했다. 그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손자 된 처지에서 지금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영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전북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다가 체포돼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부는 송영근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송대관은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소속사 스타라인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지병이 있었다. 수술을 세 차례 진행했으나 회복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긴 무명 생활을 이어왔으나 1975년 발표한 곡 '해뜰날'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박자' '유행가' 등 잇따라 히트곡을 냈다. 송대관은 1980~90년대 트로트 부흥기를 이끌며 태진아, 설운도, 고(故) 현철(1942~2024)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다.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 친근한 이미지로 사랑받으며 연기에도 도전했다.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2009) '신기생뎐'(2011) '웰컴 투 힐링타운'(2012) 등에 출연했다. 송대관은 MBC '10대 최고 가수왕', KBS '가요대상' 성인 부문 최고가수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2001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들에게 수여되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08~2010년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을 맡아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힘썼다.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와 갑작스러운 비보는 안타까움을 더했다. 송대관은 지난해 11월 정규 앨범 '지갑이 형님'을 발매했다. 지난달 19일 방송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 초대 가수로 나와 '지갑이 형님'을 열창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유족 측은 "본 장례식장은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이날 오후 10시 30분부터 익일 오전 6시까지 조문객 방문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