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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징용 소송' 통한의 13년…5년 끌더니 9분만에 결론

등록 2018-10-30 15: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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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8개월만에 신일철주금 손해배상 소송 결론

일본제철, 1943~1945년 강제노역에 한인 동원

1997년 시작한 일본 소송…"청구할 자격 없어"

국내 1·2심 '日판결' 따라…2012년 대법서 이변

파기환송심 이후 상고심 지연…5년 동안 계류

승소 확정…유일한 생존자 "혼자 남아 눈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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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10.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일본 제국 침략전쟁에 동원돼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10대 소년은 백발의 90대가 됐다. 일제 강제징용 소송을 제기해 30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이춘식 할아버지 얘기다. 그는 호적상 1924년생으로 95살이지만 실제 나이는 98세다.

 그는 당시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2005년 2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냈다. 결과는 무려 13년8개월이 흐른 이날 나왔다. 선고가 다섯 번 이뤄지는 동안 소송에 참여했던 이들은 하나 둘 눈을 감았다. 고(故) 여운택씨와 신천수씨가 과거 일본 법원에 제기한 소송까지 더하면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무려 21년이 걸린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신일철주금(당시 일본제철)의 강제노역은 일제 침략이라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냈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박정희 정권이 1965년 일본과 체결한 청구권협정과 무관하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날 재판은 시작부터 선고까지 9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재판이 왜 이렇게 지연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75년 전 일제 강제징용…"살아 돌아오는 것만도 다행"

 이춘식씨와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는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41~1943년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70여년이 지났지만 당시를 경험했던 이들은 "살아 돌아오는 것만 해도 다행인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무렵 일본제철은 일본 정부와 협력해 한인들을 끌어들였다. '오사카제철소에서 2년 간 훈련을 받으면 기술을 익힐 수 있고 이후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는 광고를 내 사람을 모았다. 보국대로 동원되거나 시당국 지시로 일본으로 넘어간 이들도 있었다.

 제철소에서의 현실은 참혹했다. 현장에서는 철관 속에 들어가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등 단순하고 위험한 일들을 해야 했다. 처음엔 2~3엔 정도의 용돈과 1~2회 외출이 허용됐지만 징용령 이후엔 그마저도 허락지 않았다. 처음부터 임금을 아예 받지 못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 정점에 이른 1945년에는 토목공사 등에도 동원됐다. 가혹한 일상을 견디다 못해 도망을 시도하거나 '도망가고 싶다'고 말만 하더라도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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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소송의 시작…일본 그리고 한국 1·2심에서의 패소

 일본에서 약 6년 동안 진행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1997년 12월24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2001년 3월27일 1심, 2002년 11월19일 오사카고등재판소, 2003년 10월9일 일본 최고재판소 모두 이들의 패소로 결론 냈다.

 지난 1991년 일본 고마자와 대학 고쇼 타다시 교수가 '연행조선인미불금 공탁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등의 공탁 경위와 내용이 알려지게 된 것이 본격적인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는 계기였다. 일부 일본 시민사회도 이들의 소송을 도왔다.

 일본 법원은 "강제징용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하고 미지급 임금을 달라"는 여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대일 청구권 소멸 ▲불법행위 발생 60여 년이 지나 시효 소멸 ▲당시 일본제철과 현재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은 다른 회사라는 등의 이유였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이 담긴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키로 한 직후인 2005년 2월28일 국내에도 같은 소송을 냈지만 결과는 일본 법원의 판단과 비슷했다. 2008년 4월3일에 선고된 1심과 2009년 7월16일에 선고된 2심 모두 여씨 등의 패소로 끝났다.

 ◇파기환송으로 반전…대법원 5년 묶인 동안 생존자는 1명

 1·2심 선고 내용으로 결과에 큰 기대가 어렵던 상황에서 2012년 5월24일 이변이 생겼다. 대법원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다",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의 실질적 동일성은 같다"며 여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 선고 당일 여씨 등은 법정을 찾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건강이 쇠약해진 상황인데다가 승소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았던 까닭이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2013년 7월10일 파기환송 후 항소심은 "각 1명 당 1억원씩, 모두 4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법원의 재상고심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신일철주금이 재상고를 제기한 것은 2013년 7월30일이었고, 대법원은 같은 해 8월13일 사건을 민사2부에 배당하고 1년 후인 2014년 6월10일에 주심 대법관을 지정했다.

 그 뒤로 올 7월27일 대법원이 사건을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까지 여씨 등이 제기한 소송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무려 5년여 동안 사건이 대법원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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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 판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18.10.30. [email protected]
선고 지연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결론을 마냥 기다리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눈을 감았다. 여씨는 2013년 12월6일, 신씨는 2014년 10월8일, 김씨는 지난 8월에 세상을 떠 이날 대법원 선고를 지켜볼 수 있는 원고는 4명 중 이씨 1명뿐이었다.

 이날 선고는 약 9분 만에 끝났다. 이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씨는 선고 이후 연신 울먹이면서 “오늘 법원에 나와 보니 나 혼자였다. 같이 있으면 엄청 기뻤을 것인데 나 혼자여서 눈물이 나오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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