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밀레니얼이 온다]⑤ "문화예술후원 플랫폼 만듭니다"
[인터뷰]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염재승 텀블벅 대표밀레니얼세대 대변자·밀레니얼 세대 후원자 만남예술경영 가르치고 가르침 받은 사제지간
"저희가 하는 일은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비즈니스에요. 이전에는 나오기 힘들었던 새로운 문화예술 펀딩스토리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있죠."(염재승 텀블벅 대표) 김성규(57) 세종문화회관 사장과 염재승(33) 텀블벅 대표는 문화예술 분야 후원과 관련 새로운 플랫폼과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주인공들이다. 김 사장은 작년 9월 세종문화회관 제9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40년 역사의 세종문화회관 첫 회계사 출신 사장이었다. 한미회계법인 대표를 지낸 김 사장은 지난 20년 동안 문화예술기관을 컨설팅해주는 예술경영전문가로 활약해 왔다. 예술단체의 회계와 경영실무 등을 도우면서 문화계 전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됐다. 예술과 기업의 간 후원매개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2013년 국회를 통과한 '문화예술 후원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메세나법)의 초안 작성에 큰 힘을 보탰다. 염 대표가 2011년 연 텀블벅은 현재 크라우드펀딩 대표 플랫폼이다. 영화, 음악, 공연, 미술, 출판, 건축, 디자인,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알리고, 후원받을 수 있는 창으로 통한다. 후원형 펀딩 규모로는 국내 최대로, 누적 후원금액 1000억원 초읽기에 들어갔다. 김 사장과 염 대표는 작년 12월9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연 '2019 ARKO 예술후원인의 밤'에서 후원매개 부문과 프런티어 부문을 각각 받았다. 예술위가 지난 6년 간 예술후원인에 대한 예우로 열어온 행사다. 기존에는 '예술이 빛나는 밤에'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올해부터 '예술후원인의 밤'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후원매개 부문과 프런티어 부문을 신설했다. 김 사장은 후원매개 부분 첫 수상자, 염 대표는 김태호 PD의 MBC TV '같이펀딩'과 함께 첫 프론티어 수상자다. 같은 달 27일 대학로 예술가의집 예술나무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다. 김 사장이 2010년께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이 학교 영화과에 재학 중이던 염 대표가 예술경영 관련 수업을 들었다.
염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장비를 대여해주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회계 수업, 통계학 수업을 들으면 제가 하고자 하는 것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라고 돌아봤다. 추계예술대 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도 역임한 김 사장은 "강의를 할 때마다 예술후원 트렌드로 '크라우드 펀딩', 특히 '텀블벅'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웃었다. 김 사장은 "크라우드 펀딩은 예술후원과 잘 맞아요. 염 대표는 영화를 찍었던 사람이라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요.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염 대표처럼 사업, 경영에 대한 이해가 있었으면 해서 회계 과목을 들었으면 해요. 듣고 잊어도 됩니다. 사업을 하다가 그 개념을 떠올리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염 대표는 텀블벅을 공동 창업할 당시 한예종 영상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영화를 찍으려고 하다 보니 제작비가 필요해 겨울 방학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단편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적게는 기본으로 300~500만원이 들어요. 몇천만원이 들 수도 있죠. 제작비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보통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거나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죠. 마침 세계적으로 소셜 미디어가 활발해지고, 온라인 결제가 쉬워지는 때였어요. 아직 한국은 예외였는데 기술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필요하다고 봤죠. 처음에 주 고객은 디자인하는 친구들이었죠." 그런데 막상 론칭을 하고나서 보니까 책임감이 생겼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가자는 마음이 생겨서 이 길을 걷기로 했죠." 김 사장도 작정하고 예술경영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서울예술단의 재무 컨설팅을 봐준 것이 계기가 돼 세종문화회관, 고양문화재단, 충무아트센터(옛 충무아트홀) 등의 재무와 회계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회계사는 드물게 문화예술인 범주에 들어가게 됐다.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제대로 찾았다고 했는데 당시 이 분야는 블루오션을 노릴 수 있는 틈새시장도 만들어져 있지 않던 때다. "이전까지 문화예술 분야에 경영 컨설팅은 없었어요. 텀블벅과 내용은 다르지만 역시 돈이 안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뿌듯했죠"라고 돌아봤다. 이후 김 사장은 여러 문화예술후원 세미나에 참석, "기업의 문화예술 기부에 대한 세액공제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해 주목 받았다. 김 사장의 혁신은 세종문화화관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조직 문화'를 전면 쇄신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일부에서는 세종문화회관의 문제점으로 조직 내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산하 9개 단체의 교류가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김 사장은 이 난제를 해결했다. 세종문화회관이 개관 41년 만인 지난해 9월 산하 예술단체 9곳의 통합창작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을 공연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김광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총연출을 맡아 협업은 물론 예술적 완성도도 높였다. 또 김 사장은 작년 5월 예술가들과 직원들의 휴식을 위한 '퍼시스-세종 아티스트 라운지'를 오픈하고 고객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공간 '라바 키즈 아이들 세상' 등을 외부 재원을 끌어와 조성했다. 이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이 화사해졌다는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 김 사장은 "제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직원들이 잘 추진해준 덕이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칭찬은 직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라며 웃었다. 텀블벅의 조직문화도 밝다. 스타트업 회사라 아직 조직이 작지만 직원들 간 수평적 문화가 잘 발달돼 있다. 염 대표는 "단기간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멀리 내다보고 각자 지향하는 미션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더 중요한 가치"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따라 텀블벅 내에서도 독특하지만 가치 있는 문화예술 후원 펀딩이 눈길을 끈다. 확실하게 문화예술 영역으로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가치들이 결합해서 더 흥미롭다. 송호준 작가의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망원동 인공위성'이 대표적이다.
염 대표는 "문화예술 후원이 우리 프로젝트에서 몇 퍼센트를 차지하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돈이 되냐 안 되냐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죠. 그보다 얼마나 흥미가 있고 가치 있냐를 따져요. 존경하고 존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중요한 거죠"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과 맞물린다. 미국 작가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의 저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1991)에서 처음 등장한 밀레니얼은 일반적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IT)에 능숙하고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사회 진출시기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어 합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면도 있다. 집이든 차든 콘텐츠든 빌려서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소유보다 특별한 경험이 우선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체험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불하는 이유다.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염 대표는 크라우드 펀딩이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할 법하다"고 여겼다. "밀레니얼 세대가 디지털과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동시에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또 자기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이렇게 판단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팬 베이스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에 익숙한데, 크라우드 펀딩이 그 발판이 돼 준다는 것이다. 염 대표는 "예전에는 대기업 규모가 돼야 할 수 있는 큰 프로젝트를 이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작은 단위의 팀들도 멋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자기 꿈을 펼치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봤다. 밀레니얼 세대인 10대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글로벌 쇼트 비디오 애플리케이션 '틱톡'과 업무협약을 추진하기도 한 김 사장은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적인 후원자. 자신의 친구 딸이 틱톡을 사용하는 것을 본 뒤 무릎을 친 김 사장은 "우리나라 예술 지원 제도는 돈을 주고 나면 끝이에요. 물론 그런 지원이 필요한 분야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교류의 장을 만들어주면서 잠재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지원책이 있어야 해요. 예술 후원 플랫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이유"라고 짚었다.
김 사장은 볼 것이 넘치는 시대에 세종문화회관에 밀레니얼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인디 가수들의 공연 '인디학개론' 객석에 물 외에도 음료와 주류를 반입할 수 있게 했다. 세종문화회관이 객석 내 음료와 주류 반입을 허용한 것은 개관 41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객석 내 주류 반입은 세종문화회관뿐 아니라 국내 공공 공연장 내에는 최초 시도다. 김 사장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연도 생각 중이에요. 지난해 대극장에서 연 해리포터 필름 콘서트가 큰 인기를 누렸는데, 영화관처럼 팝콘을 먹으면서 볼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고려 중입니다. 게임 콘서트도 고민하고 있고요. 캐릭터를 만들어 관객과 인터랙티브로 교감할 수 있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요즘 세종문화회관 외에도 갈 때가 너무 많아요. 다양한 즐길거리로 젊은 세대를 유입시켜야 하죠."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있도록 기업이미지(CI)와 브랜드이미지(BI)의 개편 작업에도 들어가는 김 사장은 "우리 공연장 굿즈 사업에도 신경을 쓸 겁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퐁피두센터처럼 예술기관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링컨 센터라고만 해도 모두 문화예술기관이라는 것을 알잖아요. 세종 센터도 그렇게 만들 겁니다." 염 대표는 20대 여성에게 가장 친숙한 텀블벅 브랜드를 좀 더 다양한 세대가 접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역시 제일 우선시 하는 것은 새로운 시스템을 이용해서 '문화예술계 후원'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든든한 우군이 됐으면 해요. 재미있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바탕이 되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세종문화회관과 텀블벅의 협업에 대한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대표적인 공공 문화예술기관과 새롭게 문화예술후원의 창구가 된 민간 스타트업 회사의 협업은 예상을 넘어서는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김 사장과 염 대표는 서로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며 활짝 웃엇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