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결산③]4년 한 우물 판 벤투의 뚝심…한국 축구 새 역사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에 원정 16강4강 신화 쓴 2002년 한일월드컵 포함 역대 세 번째 16강부임 후 4년간 '빌드업 축구' 담금질…주도하는 축구로 월드컵 무대서 강한 인상비난 여론에도 뚝심으로 '16강 진출' 목표 달성
2018년 8월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같은 해 9월 코스타리카와 데뷔전부터 자신만의 확고한 축구 철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빌드업 축구'로 요약된 그의 철학은 최후방 골키퍼부터 차근차근 패스를 전개해 나가며, 최대한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다가 상대 진영에서 빠른 패스로 득점을 노리는 패턴을 추구했다. 이는 당대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던 브라질과 스페인, 독일 등 강팀들이 즐겨 사용한 전술이기도 하다. 다만 이는 세계 축구계에서 여전히 '언더독(스포츠 경기에서 약팀)'으로 통하는 한국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문 부호가 따랐다. 냉정히 볼 때 우리보다 강팀과 만나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벤투가 고수한 '주도하는 축구'가 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기는 여럿 있었다. 승승장구하다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에 도전했으나, 개최국 카타르의 실리 축구에 일격을 당해 8강에서 탈락했다.
코로나19 사태로 A매치가 크게 줄면서 사그라들었던 비난 여론은 지난해 3월 한일전 0-3 완패 후 재점화 됐다. 10차전으로 치러진 카타르월드컵 최종예선에서 8경기 만에 본선행을 확정한 뒤에도 벤투 감독을 향한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다. 빌드업 축구가 아시아 무대에선 통했을지 몰라도,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을 가지긴 어렵다는 축구계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기복 있는 빌드업 축구의 한계는 물론 선발 명단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을 들어야 했던 선수 선발 원칙도 도마 위에 자주 올랐다. 그로인해 벤투 감독은 지난해 6월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이 됐을 때도 '코로나19' 수혜를 본 덕분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벤투는 뚝심으로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밀고 나갔다.
부상으로 조별리그 1, 2차전에 결장한 황희찬(울버햄튼)의 빈자리는 나상호(서울), 정우영(프라이부르크) 등이 메웠고, 16강 운명이 걸렸던 포르투갈과 3차전에선 김민재(나폴리)의 공백을 권경원(감바오사카)이 완벽 대체했다. 또 대회를 앞두고 주전 골잡이 황의조(올림피아코스)가 부진해지자 신예 조규성(전북)을 과감하게 기용해 월드컵 첫 멀티골이란 결과를 만들었다. 게다가 "왜 쓰지 않냐"는 소리를 들었던 이강인(마요르카)도 정작 대회가 시작되자 조커와 선발 등을 고르게 활용하며 전술적인 다양성을 가져가고 있다. 이는 4년간 꾸준히 다져온 선수단 운영이 빛난 결과였다. 세계적인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 등을 앞세운 우루과이와 1차전에선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을 중심으로 대등한 중원 싸움을 펼쳤다. 우루과이에 밀려 수비만 하다 역습할 거란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의 축구'를 하겠다던 벤투의 장담은 진짜였다.
핵심 수비수 김민재 없이 무조건 승리해야 했던 포르투갈과 3차전도 권경원이 대체자 역할을 훌륭히 해내면서 기존의 빌드업 축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또 가나전 퇴장으로 벤치에 앉지 못한 벤투 감독의 공백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4년간 호흡을 맞춰온 코치진과 선수들은 흔들림 없이 우리만의 축구를 구현해냈다. 물론 '우승 후보' 브라질과 16강전 완패는 여전히 세계 축구 강국과의 좁혀야 할 거리가 많다는 걸 재확인한 무대였다. 한국 축구에 4년은 긴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더 높은 곳으로 가려면 10년, 20년의 장기적인 투자와 인내가 필요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